기조실장-행정처 차장-처장 라인 따라 '민감 정보' 보고 의심
디가우징 하드디스크 내용, 하급자 상대로 역추적 가능성 관측도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및 법관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을 매개로 오간 문건 등을 관련자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확보해 의혹 단서를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업무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사람 중에는 현직 대법관들도 포함돼 있고, 이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대해서는 대법원에서 '제출 불가' 입장을 취하고 있어 사법부와 검찰 간 신경전이 가열되는 모습이다.
8일 사정 당국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자용 부장검사)는 법원이 제출을 거부한 고영한 대법관의 하드디스크 제출을 계속 요구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또 법원이 끝내 제출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압수수색 영장 청구 등을 포함한 다른 입수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전해졌다.
현직 대법관의 컴퓨터에는 공개나 열람 자체가 불법인 재판 관련 합의 내용이 담겨 있을 수도 있으므로 자료 제출 요구를 거절할 사유가 있다는 게 법원 입장이다.
법원은 향후 대법관들이 퇴임해도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상당 기간 보존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번 검찰 수사 때문에 일부러 증거를 폐기할 의도가 전혀 없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도 검찰이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재판거래 의혹을 규명하려면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과 업무 관련성을 맺은 인사들 사이에 어떤 의사연락이 오갔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재판거래 및 법관사찰 의혹을 불러온 내부 문건을 다수 생산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로부터 문건을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있는 사법부 인사들에 대해 일단 수사력을 모으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법원이 공개한 410건의 문건 중 상당수는 기조실에서 생산하거나 기조실을 거쳐 간 문건으로 알려졌다.
문건의 작성 경위, 보고 절차, 의사 결정 등을 파악하기 위해선 기조실 라인에 있었던 법원 간부들에 대한 인적·물적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기조실 라인은 기획조정실장-행정처 차장-행정처장(대법관이 겸임)으로 이어지는 행정처 내 보고·지시 계통을 일컫는다. 행정처의 최선임 부서 격인 기조실은 국회 등 대외 업무 등을 도맡기 때문에 '민감한' 내용의 보고서가 다수 작성됐을 것으로 의심되는 곳이다.
기조실장과 행정처 차장은 대법관으로 발탁되는 대표적 엘리트 코스로 거론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2003년 행정처 차장을 하다 대법관이 됐다.
고 대법관의 경우 2016년 2월부터 2017년 5월까지 행정처 처장을 지냈다.
그런 만큼 당시 검찰은 이 기간에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의혹 관련 문건이 그의 하드디스크에 남아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법원 측에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공개된 문건 410건 중 가장 과거 시점에 작성된 문건은 '(130822)통상임금 경제적 영향 분석', '(131101)BH배제결정설명자료(수정)', '(131219)통상임금 판결 선고 후 각계 동향 파악' 등으로 201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2014년 8월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낸 권순일 대법관 등 또 다른 현직 대법관에 대해서도 검찰이 하드디스크를 조사해 봐야 한다고 요구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권 대법관 후임으로 2015년 8월까지 행정처 차장을 지낸 인물은 강형주 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으로 현재 변호사 활동 중이다.
검찰이 기조실 라인에서 사용된 컴퓨터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은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폐기돼 복구를 기대하기 어려운 수사 현실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양 전 대법원장과 2014년 2월∼2016년 2월 행정처 처장인 박병대 전 대법관의 하드디스크는 디가우징(강력한 자력에 의한 데이터 삭제 기술) 방식으로 폐기 처분된 상태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검찰은 보고서를 생산하거나 검토·전달한 기조실 라인에서 사용한 컴퓨터를 조사해 어디까지 의혹 문건이 공유됐는지 등을 살펴보려 할 것으로 보인다.
bangh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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