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경욱 기자 = 나치의 유대인 박해상을 소개한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의 가족이 미국 이민을 두 차례 추진했으나 미 행정부의 관료주의 등 탓에 거절당했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8일(현지시간) 전했다.
안네 프랑크 하우스와 미 워싱턴DC 소재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 기념관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안네 가족은 나치의 반(反)유대주의를 피해 독일을 떠나려 했으나 당시 미국에서 형성된 반(反)난민 정서 등 탓에 어려움을 겪었다.
보고서는 나치가 점령했던 암스테르담에서 안네 일가가 은신 생활에 들어간지 무려 76년 만에 발간됐다.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는 1938년 초부터 미국 이민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에는 이렇다할 난민 정책이 없었다.
다만 국가별 할당량은 정해두고 있었다.
안네 가족이 공식적으로 이민 비자를 거절당한 기록은 없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민 비자는 '관료주의와 전쟁, 그리고 시간' 탓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안네 가족의 이민 비자 신청서류는 1940년 독일군의 네덜란드 로테르담 폭격 당시 사라졌다.
이후 유대인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진 독일군 치하에서 새로운 이민 비자 신청 서류를 얻기가 힘들어졌다.
동시에 미국에서는 난민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1938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가운데 67%가 독일·오스트리아를 비롯해 '다른 정치적 난민'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답했다.
1941년 진행된 여론조사에서는 71%가 나치가 미국에서 스파이와 파괴 공작원 네트워크를 만들었다고 믿고 있다고 응답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대통령은 이런 여론에 힘입어 독일이 점령한 나라에 거주하는 미국인 친척들의 이민 신청을 거부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안네 아버지는 미국인 기업가 등을 찾아다니며 이민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1941년 쓴 편지에서 가족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후 미국과 독일이 서로 영사관 폐쇄 조치를 단행함에 따라 안네 가족의 이민의 꿈은 무참히 짖밟혔다.
이후 1년 만에 안네 가족은 은신에 들어가게 됐다.
그들은 암스테르담에서 1944년 8월 9일까지 2년 이상 숨어지냈다.
안네는 1945년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에서 15세의 나이로 숨졌지만 그의 아버지는 여러군데 강제수용소를 돌아다니면서도 목숨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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