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보수 5·진보 4 구도로…트럼프 "판사의 판사, 진정한 사상 지도자" 극찬
민주, 임명 반대 선언하며 인준 진통 예고…임명시 대법원 보수우위 고착화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새 대법관 후보로 보수 성향의 브렛 캐버노(53)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지명했다.
이달 말 퇴임하는 앤서니 케네디(82) 전 대법관의 후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중요한 건 판사의 정치적인 견해가 아니라, 헌법과 법률의 요구를 이행하기 위해 자신의 견해를 배제할 수 있느냐이다. 확실히, 그런 사람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어 기쁘다"며 캐버노 판사의 대법관 지명을 발표했다.
그는 캐버노 판사에 대해 "법조계에서 '판사 중의 판사', 동료들 사이에서 진정한 사상 지도자로 간주된다"며 "캐버노는 흠잡을 데 없는 자격과 탁월한 자질을 갖췄고, 법 아래 평등한 재판에 대한 헌신을 입증했다"고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는 명확하고 효율적인 글을 쓰는 뛰어난 법학자로, 보편적으로 가장 훌륭하고 날카로운 우리 시대 법률 마인드로 여겨진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캐버노 판사는) 신속한 인준과 강력한 초당적 지지를 받을 자격이 있다"며 의회의 협조를 당부했다.
워싱턴DC 출신으로 메릴랜드에서 자란 캐버노 판사는 예일대와 같은 대학 로스쿨을 졸업하고 2006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 의해 판사로 임용된 보수 법조인이다. 모친은 주(州) 법원 판사였다.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에서 근무하는 등 정치 경험도 갖췄으며, 1998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을 조사한 케네디 스타 특별검사팀의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는 과정에도 참여한 바 있다.
캐버노 판사는 헌법을 입법 당시의 의도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원전주의자'(originalist)로 불리며, 탁월한 법학지식을 갖춘 것으로 정평이 나 있어 다른 판사들이 그의 판단과 결정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내, 두 딸과 함께 백악관 발표 자리에 참석한 캐버노 판사는 "나의 사법 철학은 간단하다: 판사는 독립적이어야 하고, 법을 만드는 게 아니라 법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그는 "판사는 법규를 적혀있는 대로 해석해야 한다. 또 헌법을 쓰여 있는 대로, 역사와 전통, 전례에 의해 전해진 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캐버노 판사는 또 "모든 사건에 열린 마음을 갖고 항상 미합중국의 헌법과 미국 법규를 지키는 데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캐버노 판사는 상원 인준을 받으면 오는 31일부로 은퇴하는 케네디 대법관의 자리를 잇게 된다.
대법관 지명자는 상원 법사위원회 청문회를 거쳐 상원 전체회의에서 의원 100명 중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정식으로 임명된다.
현재 공화당이 51석, 민주당과 무소속이 49석을 차지하고 있다.
공화당의 존 매케인(애리조나) 의원이 뇌종양 투병으로 부재중이어서, 민주당에서 찬성표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공화당 중 이탈표가 나오면 인준이 무산될 수도 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지명한 닐 고서치 대법관의 인준안은 찬성 54표, 반대 45표로 통과됐다.
당장 민주당은 캐버노 판사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며 공개 반대에 나서 인준 과정에 진통이 예상된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인 척 슈머(뉴욕) 의원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캐버노 판사의 임명에 반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슈머 의원은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낙태 여성 처벌' 발언을 언급하며 "캐버노 판사가 인준받으면, 여성들의 재생산권(reproductive rights)은 대법원의 5명의 남자 손에 들어간다"고 주장했다.
반면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켄터키) 의원은 "최고의 대법관 선정"이라며 "상원은 그를 인준하는 데 있어 당파성을 제쳐놔야 한다"고 말했다.
케네디 대법관 대신 캐버노 판사가 합류하면 미 연방대법원은 보수 5명, 진보 4명으로 무게추가 오른쪽으로 기울 전망이다.
1988년 지명된 케네디 대법관은 중도 보수 성향이지만 찬반 의견이 팽팽히 갈렸던 주요 사안에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며 대법원의 균형추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캐버노 판사는 케네디 대법관보다 성 소수자, 낙태, 총기 등의 문제에 보수적인 입장이라고 미 언론은 전했다.
케네디 대법관이 빠지면서 연방대법원은 존 로버트 대법원장과 새뮤얼 앨리토, 클래런스 토머스, 닐 고서치 대법관 등 보수 4명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스티븐 브라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 등 진보 4명으로 재편된 상태다. 하지만 캐버노 판사가 가세하면 다시 5대 4의 구도로 회귀한다.
특히 고서치(50) 대법관에 이어 이번에도 50대 초반의 '젊은' 인물이 임명되면 대법원의 보수 우위는 수십 년간 이어질 전망이라고 외신들은 진단했다.
미 대법관은 종신직으로, 고서치와 캐버노 등 두 사람은 최대 수십 년간 대법관으로 재직할 수 있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법부에 보수색을 확실히 입히겠다는 정치적 고려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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