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文정부 경제정책에 "평가 보류…시간 더 필요"(종합)

입력 2018-07-10 17:10   수정 2018-07-10 17:10

장하준, 文정부 경제정책에 "평가 보류…시간 더 필요"(종합)

"국민이 키운 기업들, 투기자본에 넘겨선 안 돼"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기자 =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아직은 평가를 보류하겠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주최한 '기업과 혁신 생태계' 특별대담에서 교수로서 정부의 기업·산업정책 과목을 채점해달라는 요청에 "(어려운 상황에서) 시작한 공부를 아직 제대로 못 한 학생을 평가하란 뜻이어서 다음 학기에야 학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이같이 밝혔다.
장 교수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사촌 동생이다.
장 교수는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 자체는 옳다고 보지만, 액수나 적용 분야를 달리해야 하는지는 제대로 논의해야 할 것"이라며 "대타협으로 적정한 길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장 교수는 한국경제가 심각한 저성장을 겪고 있다면서 주요 원인으로 설비투자가 급감한 점을 꼽았다.
그러면서 "이는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 개방과 함께 단기이익을 추구하는 외국인 주주들이 대거 유입돼 고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하는 바람에 대기업의 장기투자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투기자본의 입김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는 기업 장기주주에게 기하급수적으로 가중의결권을 주는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장 교수는 "1년 이하 보유주식 1주에는 1표, 2년 보유는 2표, 3년 이하 보유는 5표, 5년 이하 보유는 10표 등을 주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라며 "자본 이득세를 크게 감면해주는 제도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차등의결권의 경우 새로 생기는 기업에는 문제가 없지만 기존 기업이 도입하기엔 부적절하다"면서 "투기자본과 달리 기업의 중장기 발전을 신경 쓰는 노동자와 지역사회 대표를 기업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방법도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재계에서 도입을 요구하는 포이즌필(Poison Pill), 황금주 등은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평가하며 전경련에 쓴소리를 던졌다.
그는 "1990년대 당시 최종현 전경련 회장이 주주자본주의 논리를 들여오면서 기업은 주주의 것이니 간섭하지 말라고 정부에 요구했고, 시민단체에서 이를 거꾸로 받아들여 '지분 5%로 황제경영을 하는 재벌 총수'를 공격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전경련이 아직 주주자본주의 논리에 집착하고 있다"면서 "다른 해결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담에 함께 참석한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정부 경제정책에 F 학점을 줬다.
신 교수는 "경제정책의 기본은 생산과 분배를 함께 발전시키는 것인데, 생산은 더욱 어려워졌고 분배도 불평등을 심화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장 교수와 신 교수는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과 투자자문사의 반대 의견으로 무산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재벌이 밉다고 해서 삼성, 현대차[005380] 등 국민이 키운 기업을 투기자본에 넘겨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엘리엇 저격수'로 알려진 신 교수는 "엘리엇이 현대차를 때린다고 해서 국민이 이익을 얻는 게 아니라 오히려 침해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했고, 장 교수는 "단기자본이 이윤을 많이 내라고 하면 대기업은 하청기업과 노동자를 쥐어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장 교수는 "정부가 과거 지주회사를 금지하는 바람에 기업들이 억지로 순환출자 등 재주를 부렸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지주회사로 전환하라고 요구하며 기업집단의 존폐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두 교수는 국민연금의 기업경영 개입에 대해선 다른 의견을 냈다.
장 교수는 "국민연금 등 공공성을 가진 대규모 투자자들이 국민경제적 입장에서 주요 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똑같이 돈을 가지고 주주권을 행사하는데 이를 '연금 사회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밝혔다.
반면에 신 교수는 "국민연금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기업 지분율을 활용해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연금운용의 기본 철학과 크게 어긋난다"면서 "국민연금이 개별 기업 지분율을 5% 이내로 낮추고, 대신 주식투자 위탁운용비중을 크게 높여 내부거래 억제와 다변화 촉진이라는 본래 목적에 맞게 운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bryo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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