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사고에 그치지 않는 무모함…컴퓨터 게임 영향받은 듯
자동차 진화도 한몫한 듯…전문가 "운전자 관점서 교육해야"
(전국종합=연합뉴스) 최해민 강영훈 기자 = 초등학생이 운전대를 잡았다가 사고를 내는 사고가 잊힐 만하면 발생하고 있다.
가십이나 토픽성 뉴스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지만, 운전한 초등학생은 물론 다른 운전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생각한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초등학생의 운전은 핸들과 브레이크를 조작할 수 있는 팔다리의 길이, 차량의 흐름을 읽는 상황판단 능력, 신호등 준수와 보행자 경계 등 교통 안전의식, 반복적 운전을 통한 숙련도 등을 두루 고려한다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현실에서 초등생 운전은 실제로 일어난다.
과연 무엇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걸까?
먼저, 마이카 시대에 태어난 요즘 초등생들은 성장기부터 부모가 운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운전을 접한다. 여기에다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 카레이싱 게임을 즐김으로써 간접적인 운전 경험도 쌓게 된다.
또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차량도 일정 부분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인자동차 시대가 목전에 다가왔을 정도로 요즘의 자동차는 운전할 때 손발을 빈번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 이제 손을 핸들에 얹고 필요할 때 브레이크를 밟는 단순조작만으로도 운전은 가능해졌다.
문제는 이런 점 때문에 초등생들이 실제 운전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지난 11일 대전시 동구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 A(9)군의 운전과정이 담긴 화면을 보면 이것은 운전이 아니라 게임에 가깝다.
학생은 대전 동구청에 갔다가 아파트로 돌아온 뒤 다시 동구청과 대형마트 등을 돌아 집으로 돌아오는 7㎞의 레이싱을 한 셈이다.
주목할 점은 이 과정에서 주차된 차량 등 총 10대를 들이받았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운전한 성인이라면 1차 접촉사고에서 멈추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이 학생은 마치 컴퓨터 자동차 레이싱을 하듯이 접촉사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운전 게임'을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
실제 A군은 경찰 조사에서 "인터넷과 게임에서 운전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4일 제주의 한 대형 마트 뒤편 주차장에서 B(12)군이 부모의 SUV를 운전해 일으킨 사고도 성격이 비슷하다.
주차된 차량에 1차 접촉사고를 냈다면 그만두는 게 상식이었지만, 이 운전자는 주변 만류에도 불구하고 돌발적인 후진 등을 거듭하다가 결국 주차된 차량 5대를 파손했다.
역시 이 사고의 영상을 보면 후진이 매우 급작스럽게 일어나는데 직진 때와 후진 때 가속페달을 밟는 느낌의 차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로 보인다.
이들 초등학생은 촉법소년이어서 형사적인 처벌을 피할 수 있지만, 부모한테는 변상이라는 무거운 짐을 안겼다.
그만큼 부모들도 자동차 열쇠 관리와 자녀에 대한 안전운전 교육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는 교훈을 준 사건이었다.
전문가들은 초등생들의 운전 사고가 빈발하는 만큼 어린이 교통안전 교육을 보행자 관점 위주에서 운전자 관점도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안전정책본부장은 "일반적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통 교육은 '보행자' 관점에서 '차가 오면 피해야 한다'라는 게 중심"이라며 "하지만 어린이도 10여년 뒤엔 운전자 입장이 되기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운전자 관점에서의 교통 교육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어린이가 운전자 입장이 되었을 때 잘못된 운전을 하면 남의 몸을 상하게 할 수도, 다른 차를 부서지게 할 수도 있다는 걸 가르쳐 무면허 운전의 위험성을 알려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진형 도로교통공단 교육본부 교수도 "최근 초등생들은 게임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자동차 운전을 쉽게 경험한다"라며 "자동차에 대한 호기심과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맞물리다 보면 '무면허 운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변화에 맞춰 '보행'에 집중해 온 초등생 대상 자동차 안전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라며 "초등생 대상 교육 내용에 보행뿐 아니라 운전도 포함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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