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애로 작가, 사진가 아버지 작품 녹인 그림책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1960년대 아이들과 시골 풍경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은 사진들이 그림과 만나 그림책으로 탄생했다.
'은혜 갚은 두꺼비' 등으로 유명한 그림책 작가 유애로(63)가 사진가였던 아버지 유석영(1919∼1985) 씨의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그림책 '사진관집 상구'(보림) 이야기다.
전북 정읍 태생인 유석영은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오리엔탈 사진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 1941년 논산 강경에 정착해 사진관을 열었다. 이 지역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 연 사진관이다. 그 뒤 그는 강경 일대 초·중·고교 앨범을 제작하고 마을 생활상과 사람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 시대 일본 유학파 사진가들이 대부분 서울에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리고 작품을 남긴 것과 달리 그는 작은 지역에서 조용히 활동했기에 시대를 앞서간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겼음에도 세상에 알려질 기회가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딸 유애로 작가가 4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아버지 작품으로 그림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게 됐다.
유 작가는 1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아버지 사진에 담긴 그 당시 감성이라든가, 아이들을 대하는 애정, 사진에 대한 애정 같은 것들을 묻혀두기 아쉬웠다"며 "소박한 정서와 이야기들이지만 그 소중한 느낌을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버지 사진을 이렇게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그림책은 주인공 소년 '상구' 이야기로 펼쳐진다. 상구는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을 남자아이로 바꾼 것이다. 상구네 집은 사진관을 했고, 상구에게는 누나가 많았다. 상구는 아버지 옆에서 아버지가 사진 찍는 모습, 암실에서 사진을 인화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또 사진기를 메고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사진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과 풍경을 함께 관찰한다.
아버지가 찍은 사진에는 시골 사람들의 순박한 얼굴들뿐 아니라 논밭에서 만난 굳건한 노동과 삶의 풍경, 경쾌한 국민학교 운동회 풍경, 생기 넘치는 항구의 새우젓 가게 풍경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특히 아이들 모습이 아주 귀엽고 사랑스럽게 담겨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별한 사진 기술이나 기법이 아니라 순수하게 빛과 구도를 이용해 찍은 흑백사진들은 50년 전이라는 시공간 차이를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창호지 문을 뚫고 나와 울고 있는 색동저고리 옷의 아기 사진은 특히 압권이다. 그 순간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어 아이의 울음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다. 이 사진에 물감으로 색을 칠해 컬러 사진으로 만든 작품은 독특한 느낌을 주는 또 다른 작품이다.
이 책에는 아이가 많은 가족 이야기도 매우 따뜻하게 그려졌다.
유 작가는 "아버지 사진을 들춰내 보니 책에 넣고 싶은 작품들과 이야기들이 참 많은데, 다 쳐내고 조금밖에 넣지 못해 아쉬웠다"며 "막냇동생이 프랑스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와서 아버지 작품들을 정리 중이다. 언젠가 전시회 같은 기회를 통해 아버지 작품들을 소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아버지는 딸 다섯을 다 미대에 보내고 그림 그리는 방을 따로 마련해줄 정도로 개방적인 사고를 지닌 분이셨습니다. 그 영향을 받아 저도 이렇게 그림책 작가가 될 수 있었겠지요. 요즘엔 아이들이 너무 쉽고 빠르게 모바일로 모든 것을 접하면서 정서적인 부분이 메말라가지 않나 걱정인데요, 아이들에게 이 책으로 손편지 같은 옛 시대의 감성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는 스스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12년 동안 실험한 감성교육, 미술교육 방법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일산 작업실 인근에 내달 초 '다자인 기초교육원'을 열어 운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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