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관령은 '폭염 대피소'…해 떨어지니 서늘 "긴팔 주세요"

입력 2018-07-17 11:17   수정 2018-07-17 13:32

[르포] 대관령은 '폭염 대피소'…해 떨어지니 서늘 "긴팔 주세요"
강릉 최고기온 37.2도, 대관령 밤 기온 20.1도 '극과 극'
"야간 피서 명소인데도 편의시설 부족하고 관련 기관은 뒷짐만"

(평창=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아빠 춥다, 옷 좀 줄래."
지난 16일 밤 해발 832m에 있는 강원 평창군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휴게소 광장.

산책을 마칠 무렵 두 딸은 아버지에게 입을 옷을 꺼내달라고 부탁했다.
평창 쪽에서 끝없이 불어오는 바람이 서늘하다 못해 춥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여름에 추위가 느껴질 정도로 서늘했지만, 이 아버지는 두 팔을 하늘로 뻗으며 "그래도 좋다, 좋아"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가족과 발걸음을 옮겼다.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밤하늘의 달도 더 선명하고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다.

폭염이 매일 맹위를 떨치는 요즘 백두대간에 자리 잡은 대관령이 도심의 무더위를 탈출하는 사람들의 야간 피서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종일 불덩이를 머리에 이고 사는 듯했던 강릉 도심을 벗어나 대관령 옛길을 따라 오르자 공기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날 낮 강릉의 낮 최고기온은 37.2도였다.
깊은 산 속에서 배어 나오는 공기는 나무의 향과 찬 바람이 결합한 천연 에어컨이었다.
구불구불 오르는 대관령 옛길을 따라 정상으로 가까워지자 도로 옆 공터에는 일찌감치 차를 대고 텐트를 친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대관령 휴게소 광장은 캠핑 차량과 밤을 새울 준비를 해놓은 차량 수십 대가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도심보다 밤이 일찍 찾아오는 이곳에 모인 피서객들은 저녁을 일찍 먹고 찬 바람 사이를 거닐며 산책을 시작했다.
가마솥더위가 기승을 부리자 강릉 시민 중 일부는 여기서 텐트를 치고 밤을 새우다 새벽에 출근하는 사람도 있다.
해수욕장을 찾았던 피서객도 바닷가는 덥다 보니 야간에는 대관령으로 올라와 잠을 청한다.
대관령의 이날 밤 기온은 20.1도까지 떨어졌다.

서늘한 대관령을 찾은 피서객 가운데는 인근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피서객 김정열(74·서울 강서구)씨는 아내와 지난 14일 이곳에 도착해 사흘째 무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그는 시원한 바람이 항상 부는 이곳에서 오는 21일까지 쉬다 갈 계획이다.
김씨는 "이곳은 밤에 추울 정도여서 열대야가 없다"며 "더위와 매연, 소음으로 찌든 도심을 떠나 여기에 오면 여유가 생기고, 공기가 좋아 지난해부터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고향이 칠갑산이라고 밝힌 오현수(68·서울 성북구)씨는 "밤에 누워 밤하늘을 보면 멍석을 깔고 모닥불 피워 더위를 식혔던 어렸을 때 추억이 생각난다"며 "모기 없고, 더위 없는 이런 쉼터가 어디에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대관령 광장이 이처럼 한여름 피서지로 사랑을 받고 있지만, 피서객이 몰리는 여름철에는 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관계기관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는 불만도 쏟아졌다.
광장에는 화장실이 한 곳밖에 없었는데 네 칸인 여자 화장실은 두 칸의 문이 떨어진 채 방치돼 사용하기 곤란한 게 현실이었다.
이곳에서 10일가량 쉬다 가거나, 일부 주민은 밤을 지내고 새벽에 직장으로 출근하는데도 개수대조차 없었다.
아직 더위와 모기는 없는 청정한 곳이지만 아쉽게도 최근에는 파리가 등장했다.
음식물 분리 수거함이 설치돼 있지 않다 보니 음식물이 쌓이고 제때 수거되지 않으면서 지난해부터 파리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곳과 관련된 기관은 강원도, 평창군, 산림청 등이지만 어느 기관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고 피서객들은 불만을 터트렸다.
40년 이상 공직 생활을 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A씨는 "요즘은 작은 어촌도 시설을 제대로 운영하고 홍보까지 열심인데 전국에서 많은 피서객이 찾는 이곳은 어느 기관 하나 행락객 불편에 관심이 없다"며 "너무 답답해 관련 각 기관에 전화하면 '말씀 잘 들었다'고만 하고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평창올림픽을 치른 강원도라도 이곳을 주도적으로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dmz@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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