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아시안 챔프 도전 '폭염 속 땀방울'…"한국에 보답하겠다"
(춘천=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나의 왼손 스트레이트를 믿는다. 이길 준비는 모두 끝났다."
17일 오전 '슈퍼웰터급 한국 챔피언'보다 '난민복서'로 더 유명한 이흑산(35·압둘레이 아싼)은 승리를 향한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스트레칭과 줄넘기로 몸을 풀기만 해도 수염 끝으로 땀이 뚝뚝 떨어졌지만, 그는 폭염보다 뜨거운 집념으로 다시 덤벨을 잡았다.
훈련을 위해 체육관의 에어컨도 끈 까닭에 덤벨을 쥔 주먹을 수차례 내지르자 그의 온몸은 굵은 땀방울로 금세 젖었다.
이흑산은 오는 29일 정마루(31·와룡체육관)를 상대로 WBA 아시아 웰터급 타이틀매치를 놓고 한판을 벌인다.
챔피언 벨트를 놓고 주먹을 겨루게 된 정마루는 웰터급(66.68㎏)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큰 신장(188㎝)을 가진 선수다.
긴 팔에서 뻗어 나오는 리치와 노련한 경기 운영이 그의 장점이다.
이흑산은 이를 상대하기 위해 비장의 무기를 준비하고 있다.
이경훈 코치(전 한국 미들급 챔피언)는 "평소처럼 일정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잽 위주의 경기 운영은 힘들다"며 "뛰어난 동체 시력과 반사신경을 살린 왼손 스트레이트가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이흑산이 아시안 타이틀에 도전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생활고가 발목을 붙잡은 까닭이다.
이흑산은 2015년 10월 경북 문경세계군인체육대회에 카메룬 복싱 국가대표로 참가한 뒤 숙소를 이탈해 국내 망명을 신청했으나 1차 심사에서 기각됐다.
강제 송환의 위기에 몰렸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지난해 5월 복싱 슈퍼웰터급 한국 챔피언에 올랐다.
작년 7월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흑산은 이후 고성진, 일본의 바바 가즈히로, 필리핀의 마크 살레스 등을 연파하며 WBA 아시아 타이틀 도전 자격을 획득했다.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국내 웰터급 최강자로 자리매김한 그였지만 경제적 여건은 나아지지 않았다.
수입이 일정치 않아 공장에서 일해야 할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유명 모바일게임의 광고모델로 발탁되면서 권투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걱정을 덜어낸 그의 발놀림은 링 위에서 더 경쾌했다.
이 코치는 이흑산의 장점 중 하나로 '몸무게'를 꼽았다.
180㎝의 키에도 항상 67㎏대를 유지해 언제든지 시합에 나갈 수 있는 체중 상태이기 때문이다.
보통 선수들이 시합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체중 감량으로 컨디션을 잃어버리기 쉬운 것과 대조된다.
승리에 대한 확신에 가득 찬 이흑산은 아시안 챔피언 등극 이후를 생각하면 살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고향에 있는 가족을 데려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덕분이다.
또, 세계 타이틀을 향한 도전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이유도 있다.
최근 WBA 웰터급 타이틀매치를 통해 다시 챔피언 자리에 오른 필리핀의 복싱 영웅 매니 파키아오와의 시합도 조금이나마 성사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이 코치는 "이번 경기에서 승리해도 전적이 7승 1무"라며 "이흑산이 좋은 경기를 꾸준히 펼쳐 15승 정도는 쌓아야 파키아오에게 간택 받을 수 있지 않겠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난민 중 한 명인 이흑산은 현재 국내에서 불거진 난민 논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난민에 대한 환영과 반대가 한국에 모두 있는 것을 안다"며 "하지만 아시안 타이틀을 따고 난 후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나를 받아준 한국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이를 보답하기 위해 꼭 승리하겠다"고 덧붙였다.
'코리안 드림' 뛰어넘어 챔피언을 향한 이흑산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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