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이 17일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를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다. 6·13 지방선거 참패 이후 한 달여만이다. 이념적으로는 중도 보수층, 지역적으로는 영남 지역의 유권자들마저 지지기반에서 대거 이탈함으로써 궤멸 위기에 처한 한국당을 새로운 보수 정당으로 재건하는 것이 '김병준 비대위 체제'에 주어진 과제다.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한때 '적진 사령부'에 있었던 개혁파 지식인을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해 당의 쇄신과 재건에 새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첫 출발은 파격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앞으로 김병준 비대위가 넘어야 할 산은 너무 높고 또 많다. 한국당의 파탄은 2016년 총선 때 극명했던 계파 기득권 유지와 당내 갈등,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어떤 정치인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보신적 행태, 공리(公利)보다는 사리(私利)를 우선시하는 탐욕적 정치, 시대의 변화를 도외시한 냉전·수구적 행태 등에서 비롯됐다. 그 때문에 기득권 세력을 해체하고, 인적 청산을 단행하며, 개혁 보수의 깃발로 새 단장을 하는 것이 김병준 비대위의 책무이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를 운영하면서 이른바 친박과 비박, 복당파와 잔류파로 불리는 당내 역학 구도 내에서 적당한 공간을 만들어 운신하려 하거나, 당내 특정 세력의 힘을 빌려 정치 게임에 편승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은 실패로 가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식이라면 혁신에 실패했던 과거 '류석춘 혁신위' '인명진 비대위'의 한계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현실정치를 인정한다는 미명하에 계파 논쟁과 진영논리를 앞세우는 정치를 인정하고 적당히 넘어가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과거 실패했던 비대위 체제의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당대회까지 과도기를 지탱하는 관리형 비대위가 아니라 당의 틀을 바꾸는 혁신형 비대위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관리형 비대위로 당내 문제들을 미봉하기에는 한국당으로부터 등 돌린 민심을 되돌리기 요원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김병준 비대위의 권한이다. 차기 총선까지는 1년 9개월이나 남아 공천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공천권에 버금갈 인적 청산을 할 권한이 부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16년 총선 당시 '김종인 비대위'가 민주당을 인적 쇄신한 방식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당 외부 인사에게 전권을 줄 수 없다"며 비대위 권한을 제한하려는 당내 일각의 입장은 진정 당의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근시안적 노선이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원 인선부터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적당히 계파 안배를 하거나 무색무취한 인물들로 비대위를 구성한다면 그나마 어렵사리 눈길을 주는 민심의 기대치는 낮아질 것이다. 특히 당의 재건과 쇄신은 '김병준 비대위'를 통해서만 성취될 수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당을 살리는 책임은 당 지도부만이 아니라 당 소속 국회의원 모두가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이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무릎까지 꿇으며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며 반성문을 읽는 퍼포먼스까지 했지만 당내 계파 싸움과 기득권 다툼은 여전했다. 비대위 출범을 계기로 뼈를 깎는 자기희생과 헌신을 다짐하는 한국당 의원들의 선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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