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자촌 주민들, 혹한 대비 좁은 창문에 숨 막히는 생활
경비원·파지 줍는 노인 온종일 폭염에 무방비 노출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이효석 기자 = 수은주가 35도 안팎까지 치솟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며 전국을 뜨겁게 달군다.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는 폭염 또한 엄동설한 못지않게 두렵다.
특히 판자촌 거주민을 비롯한 에너지 취약계층, 폭염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온종일 야외에서 일해야 하는 이들의 일과는 위태로움의 연속이다.
냉방이 잘 되는 실내에서 에어컨과 선풍기 바람을 쐬며 일하는 것은 꿈꾸기 힘든 이들은 생계를 위해 건강은 물론 생존까지 위협받으며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 서울 판자촌 주민 "에어컨 엄두도 못 내죠"
"에어컨이요? 우리 집은 다행히 있긴 하지만 거의 못 틀어요. 전기세가 많이 나오니까. 올해 들어서 아직 한 번도 안 틀었어요."
서울에서 가장 큰 판자촌으로 불리는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 19일 오전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인 이 마을의 집 앞에서 빨래를 널던 주민 김 모(61·여) 씨는 올해 여름을 어떻게 지내는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단열도 잘 안 돼 냉방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한여름에 집에 있으면 자주 씻고 선풍기를 가끔 트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김 씨의 말처럼 백사마을 주민들은 30도를 넘어서는 폭염 속에서도 대부분 에어컨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이 마을에는 에어컨 있는 집이 거의 없다. 몇 집 되지도 않지만 그나마 에어컨을 설치한 집도 이런 폭염에도 사용하지 않는 듯 실외기가 꺼져 있었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20만 원 안팎의 주거비로 생활하는 이들에게 에어컨은 '그림의 떡'이다. 창문과 문을 최대한 열고 더위를 쫓으려 하지만, 한겨울 추위에 대비해 창문 자체가 좁게 나 있어 그마저도 쉽지 않다.
같은 날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불리는 강남구 구룡마을도 사정은 비슷했다. 성인 남자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공간을 사이에 두고 판잣집 수십 채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열기가 빠져나올 통로는 작은 철문이나 창문뿐이다.
주민들은 더위를 피하려고 아까운 전기를 쓸 바에야 아예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는 듯 집 안이나 문 앞 의자에 앉아 열기를 식히는 모습이었다.
네댓 평짜리 방에서 선풍기마저 끈 채 의자에 걸터앉아 있던 이연심(86) 씨는 "전기세가 아까워 선풍기를 잘 안 켠다. 그냥 샤워 한 번 하고 만다"며 "예전에는 물이나 얼음 가져다주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요새는 지원도 잘 없다"고 말했다.
◇ 경비원·파지 줍는 노인 폭염에 무방비 노출
일터에서 종일 뙤약볕을 몸으로 그대로 받으며 일하는 이들은 폭염을 피할 방법이 마땅히 없어 열사병 같은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주로 24시간 격일제로 일하는 탓에 좁은 경비 초소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는 아파트 경비원들은 마치 쪽방 같은 초소에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더위를 식혔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한 아파트에서 일하는 경비원 최 모(68) 씨는 며칠 전에 받은 수산물 택배에 함께 들어 있던 아이스팩 2개를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출근할 때 가지고 나왔다.
그는 목 뒤에 아이스팩을 가져다 대면서 "한여름에는 작은 선풍기 한 개로 한계가 있어서 개발한 자구책"이라고 전했다.
다른 경비원 이 모(62) 씨는 주민과 얘기를 나누면서도 딸이 사준 작은 휴대용 선풍기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이 씨는 "경비실 선풍기가 낡아서 더운 바람이 나오는데, 관리소장 눈치가 보여 바꿔달라는 말도 못했다"면서 "직장 다니는 딸이 경비실이 덥겠다면서 미니 선풍기를 사줘서 그나마 살 것 같다"며 웃었다.
파지를 수집하는 이들도 더위에 무방비로 노출되기는 마찬가지다.
70대 A씨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 있는 한 고물상에 리어카 가득 파지를 싣고 와 천 원짜리 몇 장과 커피 한 잔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뜨겁게 달아오른 도로변의 경계석 그늘진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는 더위로 인한 고충을 묻자 "신경 써 줘 고맙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jaeh@yna.co.kr, hy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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