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선포문·포고문 작성에 장갑차 투입계획…보도검열단도 준비
일각선 여전히 단순 검토 주장하나, 군 안팎서 실행 계획에 점차 무게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국군기무사령부가 작년 3월 작성한 계엄령 문건에 대한 대비계획 세부자료가 20일 추가 공개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 당시 작성된 해당 문건이 실행 계획이었다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을 종합해보면 기무사 계엄령 문건은 1년 만인 올해 3월 이석구 기무사령관에 의해 송영무 국방장관에게 보고됐고, 이어 지난 6월 말에야 청와대에 보고됐으며 이달 5일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에 의해 언론에 공개됐다.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은 인도 출장 와중인 이달 10일 독립적인 수사단을 꾸려 진상 파악을 지시했고 16일에는 문 대통령이 당시 작성된 계엄령 문건에 등장하는 부대 간에 오간 문서와 보고를 모두 수집하라고 특별 지시했다.
이에 국방부는 기무사 문건에 등장하는 부대인 합동참모본부와 육군본부, 수도방위사령부, 특수전사령부, 육군 8·11·20·26·30사단과 수도기계화사단, 2·5기갑여단과 1·3·7·9·11·13공수여단, 대테러부대인 707특임대대 등을 순회하며 해당 문건 수거에 나섰다.
청와대와 국방부 측의 이런 기민한 조치는 기무사 계엄령 문건이 관련 부대와의 연계 속에서 작성됐는지를 살펴 실행 계획인지를 밝히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청와대 측의 이날 세부자료 공개가 주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유한국당은 물론 군 내부 일각에선 해당 문건이 국가 혼란 사태 때 내려질 수 있는 통상적인 계엄 매뉴얼로서, 단순 검토 수준이었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실행 계획 여부를 확인하려는 조치였다는 것이다.
일단 군 관계자들은 차후 파장을 예의 주시하면서, 기무사 특별수사단의 수사 향방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그럼에도 군 안팎에서는 계엄령 문건 세부자료가 추가 드러나면서 '실행계획' 쪽으로 관측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무엇보다 세부자료에 "계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보안유지 하에 신속한 계엄선포, 계엄군의 주요 '(길)목' 장악 등 선제적 조치 여부가 계엄 성공의 관건"이라고 쓰인 점이 실행계획이었음을 확인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계엄사령관의 지휘체계를 구체화했고, 비상계엄 선포문과 계엄포고문을 이미 작성해 놓았으며, 계엄사령부 설치 위치를 명시하고, 집회 시설인 서울 여의도와 광화문에 전차·장갑차를 이용해 야간에 계엄임무 수행군을 신속히 투입한다는 계획은 실제 실행하려는 의지를 갖지 않고선 구체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6일 군인권센터가 촛불집회에 군 장비와 병력을 투입하려던 구체적 계획이 드러났다면서, 계엄군으로는 육군에서 탱크 200대, 장갑차 550대, 무장병력 4천800명, 특수전사령부 병력 1천400명 등을 동원키로 계획했다는 주장을 어느 정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과 세부자료가, 합동참모본부가 통상 2년마다 수립하는 계엄실무편람 내용과도 확연히 다르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은 통상적인 계엄령이 어떻게 발동되고, 어떤 절차 등 통상적인 매뉴얼 담겨 있다"며 "이 매뉴얼과 대비계획 세부자료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에 따르도록 지시하고 있으며 국정원 2차장이 계엄사령관을 보좌하도록 하는 국정원 통제 계획도 그냥 흘려버릴 수 없는 대목이다. 계엄사 보도검열단 9개반을 편성해 KBS와 연합뉴스 등 모든 방송·신문·통신 등을 통제하겠다는 계획도 담겼다. 여소야대 국회상황을 고려해 국회가 계엄해제 표결을 막기 위한 강압적인 방법도 구체화했다.
특정 세력이 계엄 정국을 주도할 의지가 드러난 것도 주목할 점이다. 통상 계엄시 군령권이 있는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 임무를 수행하게 돼 있으나 기무사 계엄령 문건 세부자료에는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하도록 한 점이다. 육군참모총장은 작전부대를 지휘하는 군령권이 없다.
당시 이순진 합참의장(대장)은 3사관학교 출신이었고 장준규 육군참모총장(대장)과 조현천 기무사령관(중장)은 물론 한민구 국방장관도 육사 출신이었던 점으로 미뤄볼 때 육사 출신들이 일을 저지르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심도 불거지고 있다.
이처럼 계엄문건에 대한 세부자료가 공개되면서 그간 단순검토라는 주장은 논리적 근거가 희박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작년 3월 계엄령 문건을 보고받았던 당시 한민구 국방장관 측은 '단순검토 자료'라는 입장을 보인다.
기무사 계엄령 문건이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세 차례에 걸쳐 위수령 폐지 여부에 관한 국방부 입장을 한 전 장관에게 요청해와 작성된 문건 중 하나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일부 전·현직 군인들도 3월 작성된 문건이 계엄령과 관련해서 시행 요건과 절차 등에 대한 규정을 나열하는 차원이어서 전체적인 맥락에서 실행계획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 기무사 고위 관계자는 "기무사는 계엄을 실행할 수 있는 부대도 없고 군의 군령·군정권 계선 조직에도 들어있지 않고 필요할 때 정책 조언 기능을 하는 부대"라며 "기무사가 명령을 받아 주어진 임무 차원에서 작성했든지, 추정되는 과업으로 여겨 검토 의견서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무사령관 입장에서 극도의 치안 악화 상황을 상정해 계엄의 사전 절차를 자체적으로 검토했거나, 국방부로부터 합수 업무를 검토해보라고 지시를 해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무부대 임무와 특성상 실행계획을 만든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한 예비역 장성은 "기무사 자체적인 검토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기무사가 집단 전투력을 발휘하거나 실행력이 있는 조직은 아니다. 내부 검토 자료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다른 예비역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에도 기무사에서 지금과 유사한 문건을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면서 "만약 기무사에서 당시에도 문건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내부 검토자료가 아니었겠느냐"고 말했다.
합동참모본부의 계엄실무편람에는 구체적인 병력 동원 세부계획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기무사의 세부자료와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측이 이날 공개한 동일한 계엄령 문건 세부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보이는 기무사 특별수사단이 합동참모본부의 통상적인 계엄실무편람과 어떻게 다른지를 규명하고, 해당 세부자료가 실제 예하 부대로 전파돼 부대가 지시에 따라 움직일 준비를 했는지를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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