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친박 당선' 목적 뚜렷…국민이 부여한 권한 남용"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천개입 사건을 심리한 1심 법원이 20일 판결을 선고하면서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둔 당시 여권의 계파갈등과 청와대의 선거 개입 경위를 상세하게 판시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성창호 부장판사)는 이날 박 전 대통령의 공천개입 혐의와 관련해 징역 2년을 선고하면서 범행동기를 당시 급변하던 여권 내 정치지형에서 찾았다.
판결문 등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의 공천개입 사건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정치생명을 걸었다"고 공언하며 추진한 국민경선 구상에서 비롯됐다.
김 전 대표는 2015년 여름부터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등을 도입해 당내 경선에 일반 시민 여론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인지도 높은 현역 의원이 많았던 이른바 '비박' 진영에 유리한 방식이었다. 박 전 대통령으로서는 2016년 4월 총선 이후 국정운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판부는 이런 위기의식을 '범행 동기'로 판단했다. 당내 주도권을 두고 갈등을 빚던 '비박'을 최대한 배제하고 '친박' 후보를 최대한 많이 낼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새누리당이 이미 비박계 영향력 아래 있었기 때문에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 등 청와대 참모들이 가담할 수밖에 없었다고 봤다. 현 전 수석의 지시를 받은 신동철 정무비서관이 '친박 리스트', '광역지구별 경선 및 선거전략 자료', '새누리당 공천룰 관련 자료' 등 총선 관련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문건은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에 전달돼 공천룰을 짜는 데 반영됐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지지율이 잘 나오는 친박 인물을 미리 알아보기 위해 전통적 텃밭인 강남3구와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120여 차례 여론조사를 했다. 친박을 밀어주기 위한 전략 수립의 기초자료로 삼기 위해서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청와대가 공천룰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는가 하면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에 개입한 사실도 인정됐다.
20대 총선에서 '공천 파동'을 빚으며 김무성 대표와 극심하게 대립했던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박 전 대통령이 사실상 '지정'했다는 진술은 법정에서도 나왔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현 전 수석이 공천관리위원 선정에도 마찬가지로 관여했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은 자체적으로 세운 선거전략을 토대로 당내 경선에 적극 개입했다. 현 전 수석 등을 통해 후보자들에게 특정 지역구에 출마하라고 종용하거나 연설문을 대신 써주기도 한 것으로 수사와 재판에서 드러났다.
재판부는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에 관여한 박 전 대통령의 행위가 새누리당 당원으로서 통상적인 정당활동이나 의견 개진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친박 후보의 다수 당선이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공천개입으로 "선거의 자유와 공정이 심각하게 훼손될 위험이 초래됐다"며 "대통령으로서 헌법적 책무를 방기해 국민에게 부여받은 권한을 함부로 남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경선 이후 선거운동 단계에서 유권자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고 국정을 원만히 이끌고자 하는 '선의'가 있었던 점을 양형에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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