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굴뚝 올라 건강검진…"근육량 줄고 불안감·고립감 급증"
폭 80㎝ 철제난간 매달려 간이천막 생활…하루 2차례 물·음식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폭염 속에서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의 체중과 근육량이 급격히 줄고 있고 건강악화가 우려됩니다. 고립감이나 불안감 등 심리적인 고통도 커 보입니다."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에서 굴뚝 고공농성을 해온 천막 제조업체인 파인텍 노동자들의 농성이 22일 253일째를 맞았다.
이날 의료진 3명은 농성 중인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 확인을 위해 75m 높이의 굴뚝에 올랐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홍종원 의사, 길벗 한의사회 오춘상 원장, 심리치유공간 와락의 하효열 치유단장 등 3명이 굴뚝에 오르기 시작한 오전 10시께 서울의 수은주는 이미 32.2도를 가리켰다.
뜨겁게 달궈진 철제 난간을 붙잡고 굴뚝 주변 계단과 사다리를 30여 분 동안 오른 끝에 의료진은 굴뚝 정상에 도착했다.
파인텍지회 소속 홍기탁 전 지회장, 박준호 사무장은 파인텍 공장 모기업인 스타플렉스가 노조와 약속한 공장 정상화와 단체협약 이행 등을 촉구하며 지난해 11월 12일부터 이곳 굴뚝에 올라가 농성 중이다.
모회사의 공장 가동 중단과 정리해고에 반발해 2014년 5월 27일부터 2015년 7월 8일까지 408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차광호 지회장에 이은 두 번째 농성이다.
전국적으로 한낮기온이 35도 안팎까지 치솟는 불볕더위가 열흘 이상 지속하는 가운데 홍 전 지회장과 박 사무장은 75m 높이의 굴뚝에서 쏟아지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힘겹게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의료진들은 이날 채혈과 혈압 점검 등을 통해 농성자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심리상담과 침 시술 등을 했다.
건강검진을 마치고 오후 1시 25분께 지상으로 내려온 의료진은 "농성자들이 좁은 공간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목이나 허리 등 근골격계 통증이 심하고 근력이 약화하고 있다"며 "식사도 제한적이고 건강을 유지하기가 쉬운 상태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농성자들은 사람 한 명 지나가기도 힘든 폭 80㎝의 철제 통로에 겨우 천막을 쳐놓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5시 두 차례 간단한 식사와 물이 담긴 도시락 가방이 줄에 매달려 농성장에 제공되지만, 행여나 찬물을 마시고 배탈이 날까 봐 우려돼 얼음물조차도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의료진들은 특히 "굴뚝 위에서 세 계절을 보내면서 스트레스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심리적인 부분이 크게 우려된다"며 "하루빨리 노사 간에 대화의 물꼬가 터질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408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바 있는 차 지회장은 "파인텍 노동자들은 2006년부터 13년간 정리해고, 위장 폐업 등에 맞서 거리에서 싸웠지만, 회사는 2015년 공장 정상화, 단체협약 체결을 약속한 뒤 또 약속을 어겼다"며 "김세권 사장은 지금껏단 한 번도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차 지회장은 이어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을 내걸고 탄생한 정부인 만큼 정부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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