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8일까지 '강북한달살이'…에어컨 없는 방 2개짜리 200만원에 빌려
"책상머리 정책은 2차원, 시민 삶은 3차원"…수박 먹으며 주민들과 즉석 간담회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옥탑방이니까 더울 것 같습니다. 저야 낮에는 일하러 가니까 주민들은 진짜 힘드실 것 같네요. 강북이 더 뜨거운 것 같아요."(박원순 서울시장)
"우리 옥상 바닥 온도 쟀더니 57도, 58도였습니다."(삼양동 주민)
30년 만의 폭염이 절정에 치달은 22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딴집 살림'을 차렸다.
수십억짜리 번듯한 관사를 놔두고 박 시장이 별도로 살림을 차린 곳은 구릉지, 낡은 주택가인 강북구 삼양동의 한 단독주택 옥탑방이다. 솔샘역 언덕길 중간에 위치한 방 2개짜리 9평(30.24㎡) 규모다. 오르막 골목길을 50m 올라오면 만나는 짙은 청록색 대문 집이다. 에어컨도 없다. 대신 1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평상이 옥탑방 문 앞에 놓여 있다. 동네 주민이 남은 건축 자재로 만들어 줬다고 한다.
박 시장은 이날 저녁부터 내달 18일까지 이곳에서 살면서 시청으로 출퇴근한다. 시민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시정을 하겠다는 박 시장의 '강북 한달살이'가 시작됐다.
"앞으로 한달간 살면서, 선거에서 밝혔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왔습니다. 책상머리에서의 정책은 2차원이지만 시민들 삶은 3차원입니다. 현장에 문제의 본질도, 답도 있습니다. 동네, 나아가 강북 전체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박 시장은 오후 5시 부인 강난희 여사와 함께 간단한 가재도구를 챙겨 이곳으로 이사왔다. 인근 주민들과 공무원 등이 삼삼오오 모여 이사 광경을 지켜보았다.
대문 열고 들어가 좁은 마당을 지나 계단으로 돌아올라가면 옥탑방이 있다. 바닥은 방수 초록색 재질이다. 옥상에 난간이 없어 다소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문 열고 들어가면 정면에 화장실, 좌우로 방이 하나씩 있다. 성인 한명 샤워할 수 있을 만한 크기의 화장실에는 변기와 세면대, 샤워기, 수건 넣는 찬장이 있다. 방 두 개 중 하나는 박 시장이 쓰고, 다른 방은 수행비서와 보좌관들이 돌아가면서 사용할 예정이다.
박 시장의 방에는 작은 앉은뱅이 책상 하나, 간이 행거, 이불이 놓여있다. 모두 박 시장이 쓰던 것이다. 다른 방에는 행거, 이불, 선풍기 2대가 놓여 있다.
옥탑방 입구에는 하얀색, 검정색 고무신 2짝이 놓여있는데, 검정색 고무신은 강 여사 것이다. 강 여사는 이 곳을 가끔 들를 예정이다.
이 옥탑방은 비어 있던 집이다. 박 시장은 다음달 18일까지 머물지만, 서울시는 옥탑방을 청소하는 등의 기간까지 잡아 50일간 빌리며 세로 200만원을 냈다. 단기 임대라 장기 임대보다 많이 내야 했다고 한다.
30여분 간 짐 정리 후 박 시장 부부가 옥탑방 평상에 앉아 기자들과 마주했다.
더위 속에 박 시장이 옥탑방 살이를 하게 된 것이 걱정되지 않냐는 질문에 강 여사는 "평소 땀을 많이 안 흘리는데 오늘은 많이 흘리네요"라며 걱정했다.
박 시장은 "새내기 주민이 됐는데, 주민들이 너무 환영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내일은 친해져야 하니 주민들께 인사드리고, 관공서 인사 드리는 일정이 많이 잡혀 있다. 모레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볼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절박한 민생의 어려움을 느끼고 강남북 격차를 고민하는 시간을 갖겠다"며 "한달간 제가 말하기보다 주민들에게 듣는 시간을 가질 테니, 시장 아니고 이웃 주민으로 대해주시고 언제든지, 무엇이든 말씀해 주시길 바란다. 제겐 너무 소중한 시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박 시장은 한달간 삼양동에 살면서 주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내놓겠다고 밝혀왔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나오겠냐는 질문에 "미리 말하면 재미 없지 않냐"며 웃은 그는 "그간 제가 이렇게 집중적으로 강남북 격차 해소를 위해 고민할 시간이 없어서 이번에 주민들과 소통해보면서 고민해보겠다. 끝날 무렵에는 지역주민, 시민들에게 연구하고 고민한 정책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민생 문제, 강남북 격차를 가장 중점적으로 보겠다고 강조했다.
"그냥 구청 가서 얘기 듣고 시청에서 회의하는 건 부족합니다. 와서 보면 그런 게 다 보이고 고민 결과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제가 여기 온건 시청이 왔다는 것입니다. 각 부서가 모두 강남북 격차 해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박 시장은 '연구'를 위해 책도 세 권 들고 왔다고 했다.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리처드 플로리다)는 도시빈곤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 담은 책이고, '사소한 부탁'(황현산)은 세월호, 국정농단, 여성혐오까지 작가의 생각 담은 수필 같은 책입니다. '어디서 살것인가'(유현준)는 주택이라는 게 사고 파는 대상이 아니라 거주하기 좋은 주택이 무엇인가 잘 파헤친 책이고요. 이 3권 읽고 또 사러 가려구요. 책도 그렇고 웬만하면 여기 솔샘시장에 장보러 다닐겁니다."
동석한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박 시장이 주민으로 한달 산다는 것은 삼양동민, 강북구민은 어떻게 생활할까, 삶을 체험하는 시간"이라며 "책상 앞에서 고민하는 정책이 아니라 시민 삶을 느끼면서 체험하겠다는 것이라 주민들이 아주 기대가 크고 환영한다"고 말했다.
또 더불어민주당 박용진(강북구을) 국회의원은 "서울에서 가장 주민으로 살기 어렵다는 동네, 달동네라 불리는 곳인데, 여기 산다는 건 주거환경,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라 너무 고맙다"며 "백날 국회의윈, 구청장이 말하면 뭐하나, 한번 보시는게 낫지"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간담회 도중 옥탑방을 내려가 대문 밖에서 기다리던 주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어 주민 10여 명과 함께 다시 옥탑방으로 올라와 간담회를 이어갔다. 주민들은 "우리 동네 오신 걸 축하드립니다"라며 박수를 쳤다.
박 시장은 "사실은 저도 중학교 졸업하고 서울에 왔는데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져서 재수하면서 처음 산 집이 신길동 언덕에 있는 집이었다"며 "버스표 한 장에 7원 하던 시절인데 시내 나오려면 새벽 버스 타고 나와서 하루종일 공부하고 들어가고 했다. 그런 생활을 해서 (이곳 옥탑방이) 아주 낯설지는 않다"고 말했다.
간담회 도중 인근 가게 주인이 수박을 들고 왔다. 강 여사가 수박을 잘라 다 같이 나눠먹었다.
박 시장의 강북 한달살이가 수박처럼 시원하고 달콤한 결과를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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