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중국서 활동한 고구려 이주민, 정체성 유지"

입력 2018-07-23 11:27  

"6세기 중국서 활동한 고구려 이주민, 정체성 유지"
김영관 교수, 고구려 유민 묘지명 논문 잇따라 발표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고구려가 멸망하기 전에 중국으로 건너가 정착한 이주민 중 일부는 고구려인이라는 출계 의식을 여전히 강고하게 유지하며 정체성을 이어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 고대사 전공인 김영관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2007년 중국 산시(陝西)성 셴양(咸陽)에서 발굴된 고빈(高賓, 502∼572) 묘지명을 분석한 논문 '고구려 유민 고빈 묘지명에 대한 연구'를 학술지 한국고대사탐구 제28집에 실었다.
고빈은 수나라 문제가 총애한 신하인 고경의 아버지로 역사서 '주서'(周書) 열전에 올랐으나 우리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다. 셴양에서 나온 그의 묘지명(墓誌銘·죽은 자의 이름과 행적을 적은 글)은 가로·세로 48㎝이고, 718자를 새겼다.
김 교수는 "고구려인 묘지명은 대개 고구려 멸망 이후 당나라에 들어간 유민의 것인데 비해 고빈 묘지명은 멸망 이전에 들어간 인물의 유물이라는 점이 특이하다"며 "중국에서 간단한 연구가 진행됐으나, 일부 판독 오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묘지명에 따르면 고빈은 성명이 독고빈(獨孤賓)이나 옛 성은 고(高)씨로 발해 조인(條人)이며, 위(魏) 대통(大統) 중에 독고씨 성을 받았다. 기둥과 주춧돌로 쓸 큰 재능과 세상을 다스릴 커다란 지략을 품고 있다는 평가도 받았다.
김 교수는 "문헌을 보면 고빈의 출신지인 발해는 오늘날 발해만 일대가 아니라 한(漢)대에 처음 설치한 지방행정 구역인 발해군을 가리킨다"며 "요동에 있던 고빈 조부 고고(高暠)는 북위와 고구려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북위행을 택했고, 고구려와는 반대쪽 변방인 중국 서북부 안정군(安定郡) 군수를 지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빈은 대사마 독고신(獨孤信)에게 발탁돼 전공을 세워 출세했고, 독고씨로 사성(賜姓)을 받았다"며 "아들인 고경은 수 문제를 보좌하는 자리에까지 올라 이름을 떨쳤다"고 부연했다.
김 교수는 고빈이 독고씨라는 성을 받았음에도 묘지명에 옛 성을 고씨라고 명시하고, 아들 고경이 독고씨를 사용하지 않은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고구려인들이 중국으로 이주한 후에도 고씨 성을 버리지 않고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한나라 경제(景帝) 후손인 독고신은 본성인 유(劉)씨를 버렸지만, 고빈과 고경은 고씨라는 출계의식을 강고하게 유지했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 교수는 고빈 묘지명 연구 논문에 이어 고구려 유민 이은지(李隱之, 655∼705) 묘지명을 분석한 논문도 최근 학술지 한국사연구에 발표했다.
2015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은지 묘지명은 중국 허난(河南)성 뤄양(洛陽) 룽먼(龍門)박물관에 있다. 출토 장소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며, 1928년 그의 아들인 이회(李懷) 묘지명이 먼저 발견됐다. 이은지와 이회는 문헌에는 나오지 않는 인물이다.
김 교수는 "이은지와 이회 묘지명에는 모두 '평락향지원'(平樂鄕之原)에 장사를 지냈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곳은 뤄양 북동쪽 망산(邙山) 지역"이라며 "당(唐)대에는 가족묘가 흔하게 만들어졌으므로 두 사람도 같은 곳에 묻혔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은지 묘지명은 고빈 묘지명과 크기가 거의 같은 정사각형 형태로, 448자를 새겨 넣었다. 현존하는 묘지명은 부인 유씨가 세상을 떠난 뒤 합장한 739년 5월에 제작됐으며, 이전에 이은지가 사망한 직후 만든 별도 묘지명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 교수는 이회 묘지명에 있는 "증조인 이경(李敬)이 수의 양평군 종사(從事)였다"는 대목을 근거로 이은지를 고구려 유민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에 대해 이은지 묘지명 말미에 '사마(司馬)의 아름다운 덕은 이역(異域)으로부터 왔다'는 구절을 근거로 "이은지 가문은 고구려 말까지 요동에 거주하다 당으로 들어온 고구려 유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은지 묘지명과 이회 묘지명에는 모순되는 기록이 있지만, 이회 묘지명은 고구려 출신임을 드러낼 필요가 없어 당에 들어온 시기를 (실제보다 이르게) 조작한 것 같다"며 "이은지는 고구려에서 태어나 고구려가 망하면서 당에 들어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은지가 별다른 관직을 지내지 않았다는 추론에 대해서도 묘지명에 있는 '중역'(重譯)에 주목하면서 "중역은 통역을 맡은 사신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은지도 통역을 담당한 관리로 활동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면서 "고구려 유민이자 연개소문 아들로 당 조정에서 통역을 담당한 천남산(泉男産, 639∼701)처럼 당 조정과 고구려 유민 사이 통역을 맡아 세상을 떠난 뒤 천주(泉州) 사마에 추증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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