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떠난 '경계의 미술가' 박이소 삶을 더듬다

입력 2018-07-24 17:16   수정 2018-07-25 17:27

일찍 떠난 '경계의 미술가' 박이소 삶을 더듬다
국립현대미술관 첫 회고전…유족 기증 아카이브로 입체적 조명



(과천=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흐릿한 별 세 개가 종이 위에 떴다.
비슷해 보이는 별들은 각각 커피, 코카콜라, 간장으로 그렸다. 사전 설명 없이, 보는 이가 재료 정체를 구분하기란 불가능하다.
이국적 향취의 커피, 미국 문화의 대표 아이콘인 코카콜라, 아시아 요리의 핵심 기둥인 간장을 통해 미묘한 문화 정체성 차이를 짚으면서도, 정체성 차이라는 것이 과연 절대적인지 생각하게 이끄는 작품이다.
1994년 '쓰리 스타 쇼'를 선보이면서 "나는 구별할 수 있고 너희는 구별할 수 없음에 대한 약 올리기"라고 말한 이는 개념미술가 박이소.
1957년 태어나 2004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1982년부터 1995년까지는 미국에 머물렀다. 삶도, 한국활동 기간도 짧았지만 이른바 '경계의 미술'을 통해 한국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된 박이소 회고전 '기록과 기억'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6일 개막한다.
"민중미술과 모더니즘의 대립구도가 와해되기 시작한 시기에 국내 미술계에서 박이소가 보여준 '경계의 미술'은 이후 세대의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줘 한국 현대미술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채색했다."(국립현대미술관)



이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우리는 행복해요'가 꼽힌다. 건물 옥상에 '우리는 행복해요'라고 적힌 대형 입간판을 세우는 형식이다. 공허한 구호를 통한 이미지 조작을 풍자하면서도 행복에 대한 열망도 담았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순적인 반응을 통해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국립현대미술관) 박이소 작업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의 아이디어 스케치와 지시문만 남겼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작가 사후 여러 차례 재현된 '우리는 행복해요'를 서울관에서도 선보인다는 구상이다. 서울관이 경복궁과 인접한 만큼, 25일 문화재심의위원회 최종 결정을 거쳐 작품 설치 여부가 결정된다.
과천관 전시는 2014년 유족이 기증한 아카이브와 대표작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졸업 후 '박모'(박아무개)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 1984년부터 2004년까지 20년간 쓴 작가노트 21권이 중심 역할을 한다.
작가 사후 열린 미술관급 전시로는 4번째 전시다. 이전 전시들이 드로잉이나 설치 중심 작업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번 전시는 "박이소의 시각적 연대기"를 펼쳐 보이는 자리다.



독일 작가 요셉 보이스의 말을 패러디한 '자본=창의력'(1986), 타자-타문화 문제를 파고든 '이그조틱-마이노리티-오리엔탈'(1990), 예술이라는 행위가 기존 질서를 교란하는 블랙홀과 다르지 않음을 말하는 '블랙홀 의자'(2001) 등 대표작 50여점을 통해 작업 변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각종 정보와 아이디어를 담은 드로잉은 기발하며 꼼꼼하고 정교하다.
전시를 준비한 임대근 학예연구관은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천재 개념미술가로만 생각했는데 그 뒤에는 엄청난 백조의 발짓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면서 "이렇게까지 많이 다듬을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치고 또 고쳤더라"고 설명했다.
임 연구관은 "박이소는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만드느냐는 주제에서 왜 미술을 하고, 왜 작품을 만드는가로 질문의 형태를 바꾼 작가"라면서 "그가 고민한 것들을 살펴보면서 우리 질문의 무게 중심 또한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전시는 12월 16일까지.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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