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으로 피신 도중 다수 희생…10년만 최악 산불로 사상자 속출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그리스가 10여 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산불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23일 오후 늦게(현지시간) 수도 아테네 외곽의 서부와 북동부 해안 도시에서 잇따라 대형 산불이 번져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최소 50명, 부상자는 약 160명에 달하고 있다. 실종자 신고도 빗발치고 있어 인명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개연성이 크다.
이 같은 피해는 지난 2007년 7∼8월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에비아 섬 일대를 휩쓴 산불 이후 가장 심각한 것이다. 11년 전 산불로는 70명 가까이 숨진 바 있다.
이번 산불의 희생자는 아테네에서 북동쪽으로 40㎞가량 떨어진 해안도시 마티 일대에 집중됐다.
현지 관영 ANA통신에 따르면 24일 오전 마티 해안 인근에서만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의 사체 26구가 바다에서 15m 떨어진 지점에서 한꺼번에 발견돼 화재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짐작케 했다.
그리스 소방청의 스타브룰라 말리리 대변인은 "이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은 바다가 지척이었음에도 제때 불길과 연기를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선 20여 명의 사망자 시신도 전부 마티를 중심으로 한 아테네 동부 라피나와 네아 마크리 사이에서 발견됐다고 그리스 당국은 설명했다.
이들 상당수는 불길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자택이나 차량에 갇힌 채 목숨을 잃었다. 여성 3명과 어린이 1명을 포함한 사체 4구는 인근 바다에서 수습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불길을 피해 바다로 뛰어들었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룻밤 사이의 불로 이처럼 희생자가 속출한 것은 시속 100㎞에 달하는 강풍을 타고 산불이 주택가 쪽으로 삽시간에 번졌기 때문이라고 당국은 설명하고 있다.
불길과 연기의 확산 속도가 워낙 빨랐기 때문에 집을 버리고 자동차로 탈출한 주민들 상당수도 속수무책으로 차량에 갇힌 채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야니스 카파키스 시민보호청장은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에게 "시속 100㎞로 분 강풍으로 극단적인 상황이 초래됐다"고 보고했다.
마티가 연금생활자,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단위 휴양객에게 특히 인기가 있는 휴양지라, 노약자와 어린이들이 재빨리 불길을 피하기 어려웠던 것도 피해가 커진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최근 그리스에 섭씨 40도가 넘는 고온 건조한 날씨가 이어진 것도 산불의 빠른 확산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꼽힌다.
아직 화재 원인이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당국은 이날 아테네 외곽에서 여러 건의 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에 비춰 이번 산불이 방화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디미트리스 차나코풀로스 정부 대변인은 "아테네 근교의 서로 다른 세 지점에서 총 15건의 화재가 동시에 시작됐다"며 수상한 움직임을 적발하기 위해 미국에 드론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2007년 펠로폰네소스 반도 산불 당시에도 당국은 방화로 산불이 비롯됐다고 보고, 방화범 체포에 100만 유로의 현상금을 걸기도 했다.
한편, 이번 산불로 가옥 수백 채가 불에 타고, 차량도 수십 대가 전소하는 등 재산 피해도 상당할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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