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노리고 불질렀다" 동시다발적 발화에 방화 의혹
생존자 "제때 대피명령 못받아" vs 당국 "미숙했지만 대피명령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그리스 수도 아테네 외곽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로 최소 80명이 숨지고 다수의 실종자가 발생한 가운데 이번 산불이 방화 등으로 인한 인재일 수 있다는 의혹이 퍼지고 있다.
아테네 외곽 서부와 북동부 도시에서는 지난 23일(현지시간) 오후 몇 시간 간격으로 두 개의 대형 산불이 확산했다.
서부에서 발생한 산불은 적시에 대피 명령이 내려져 인명 피해를 내지 않았으나 아테네에서 북동쪽으로 약 40㎞ 떨어진 마티와 라티나 등에서는 시속 100㎞에 달하는 강한 바람을 타고 불이 순식간에 퍼져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낳았다.
25일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마티와 라티나 일대에서 당국이 본격적으로 실종자 수색에 나선 가운데 일부 생존자들 사이에서 방화 의혹과 당국의 미숙한 대응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NYT는 현지 주민 다수가 금세기 최악의 인명 피해를 낳아 국가적 재난으로 기록될 이번 화재와 관련, 짧은 시간에 어떻게 여러 곳에서 산발적으로 화재가 발생했으며 삽시간에 무서운 속도로 불길이 확산할 수 있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피해 지역이 속한 아티카 주에서 수십 건의 산불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점을 지적하며, 이번 참사가 방화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지난 23일 니코스 토스카스 그리스 공공질서부 장관도 여러 건의 소형 산불이 급격히 확산한 점으로 미뤄 화재가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해 방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현지 소방당국은 산불이 완전히 진압될 때까지 화재 원인 조사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방화 의혹이 확산하면서 주민들 사이에서는 산림보호구역 내 토지를 소유한 이들이 개발을 위해 산림을 정리하려 불을 냈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일각에서는 숲 속 곳곳에 불법적으로 지어진 주택들이 늘어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NYT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간 숲 속에 무차별적으로 지어지는 불법 건축물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최근 그리스 정부는 불법 건축물 소유주들에게 소액의 벌금을 내고 자발적으로 신고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그리스 마라톤의 도로변에는 조립식 주택을 판매하는 업체들이 즐비하고 해안에 가까워질수록 콘크리트블록, 목재, 정원용 가구용품 등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고 NYT는 전했다.
라피나 시 인근 마라톤로 부근에 포도원을 보유한 디미트리스 파파스피로풀로스는 전소한 한 불법 건축물을 가리키며 "숲 속에 집을 지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며 "계속 집을 지어대면 계속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지식인과 지리학자들의 모임인 '애틀라스'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04년 사이에 아테네와 인근 휴양지들이 속해 있는 아티카 지역의 산림 26%가 사라졌다고 NYT는 전했다.
애틀라스는 그동안 이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의 65%가 원인 미상이며 자연 발생적 화재는 2.6%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또 이 지역에서 방화가 일상적이어서 목동들이 양이 풀을 뜯을 수 있는 목초지를 만들려 산림에 불을 내는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화재의 생존자 일부는 당국이 대피 명령을 늦게 내리는 등 주민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제때 알리지 않아 인명 피해를 키웠다고 비판하고 있다.
바다로 대피해 목숨을 건졌다는 로즈마리 콜로크트로니는 경찰이 불길을 피하는 차량을 마티 시로 향하도록 지시했는데 극심한 도로 정체로 이어져 차량 속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많았다며 "경찰과 소방당국이 우리를 죽도록 버려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비판에 라피나 시의 에반젤로스 부르노스 시장도 적절한 주민대피 프로그램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고 인정했으나 당국이 주민들에게 대피하라고 알렸다고 해명했다.
mong07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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