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 폭염에 생장 늦어져…배춧속 녹는 '꿀통' 현상 나타나
(강릉=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배추농사 35년 만에 이런 더위와 가뭄은 처음입니다."
26일 국내 최대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인 강원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 '안반데기'에서 배추농사를 짓는 이모(55)씨는 하늘이 야속하기만 하다.
해발 1천100m 안반데기는 평소 한여름에도 기온이 30도를 밑돌아 여름 배추농사가 적격인 곳이다.
하지만 보름 넘게 이어진 불볕더위는 고랭지마저 삶아버려 지역 농가를 시름에 빠지게 했다.
높을 고(高)에 찰 랭(冷)을 더한 고랭지는 제 이름값을 잃고 폭염에 무릎 꿇었다.
구름 아래 동네 농민들은 이길 수 없는 하늘과 부지런히 싸웠다.
대형 물탱크차와 살수차를 끌고 올라와 부지런히 배추에 물을 댔다. 스프링클러도 부지런이 이를 도왔다.
더위에 약해진 배추가 병 들지 않을까 약재도 부지런히 줬다.
이 같은 노력에도 심은 지 한 달이 지난 배추는 낯선 더위에 지친 듯 생장을 멈췄다. 초록으로 가득 차야 할 밭은 속을 채우지 못한 배추들로 곳곳이 휑했다.
많은 배추에서 꿀통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수분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 배추가 가운데서부터 녹아버리는 현상이다.
몇몇은 배추 무름병에 걸려 속이 여물지 않고 잎사귀 끝부터 마르고 무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농민들은 애타게 비를 기다리고 있다. 흡족한 비가 내린다면 작황 문제없이 배추를 출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수(61) 왕산면 대기4리 이장은 "지금은 병충해가 아니라 가뭄이 문제"라며 "물이 모자라 배추 생장률이 20%가량 감소했는데 비만 내려준다면 대부분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은 적어도 이달 말까지는 비가 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피서철이 끝나는 8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출하를 시작하는 까닭이다.
지금 상태라면 수확량 감소뿐 아니라 결구율(배추가 단단한 정도)이 떨어져 상품성까지 잃게 된다.
강릉시에 따르면 현재 고랭지 배추의 경우 크기가 19∼20㎝ 정도로 평년보다 4~5㎝ 이상 작은 편이다. 배춧잎도 지난해보다 6장 이상 적은 21∼22장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더위가 고랭지 배추 농민 가슴을 태우고 있다. 12호 태풍 '종다리'의 종잡을 수 없는 경로가 한반도로 향할지 주목된다.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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