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숙 신간 '우리 기쁜 젊은 날: 응답하라 1975-1980'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기꺼이 시대를 앓으며 열정과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눈 우리 세대의 작은 전사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신간 '우리 기쁜 젊은 날: 응답하라 1975-1980'은 음악평론가이자 클래식 교양서 전문 작가로 활동 중인 진회숙이 자신과 같은 70년대 학번들에게 바치는 애틋한 서사다.
학생 운동사 주체의 자리에 '386세대(80년대 학번)'가 자리 잡음에 따라 역사 속에서 빠르게 퇴각한 학생운동 1세대, 70년대 학번의 청춘 시절이 저자의 매끄럽고 생생한 필력에 담겼다.
이화여대 성악과 75학번인 그는 글의 서두부터 자신을 운동권의 '주변 인물'로 끊임없이 규정한다. 투쟁의 주인공이 아닌 관찰자였음을 고백하고 그 관점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자격지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 글을 쓰는 나의 입장은 어디까지나 관찰자라는 점이다."(8쪽)
후일담 서술 방식을 통해 1세대 학생운동의 치열한 저항뿐 아니라 지적 각성, 운동권 학생들의 사랑, 개인적 욕망과의 충돌, 우정과 연민까지 담아냈다. 이 때문에 70년대 학번은 물론 그 이외의 세대에게도 무엇인가를 '추억'하게 만든다.
대학에서 꼭 해보고 싶은 일로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로 유명한 '학림다방'에 가보기"를 첫손에 꼽던 그는 야학 교사 경험을 통해 사회에 눈을 뜨고 투쟁의 대열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헤르만 헤세, 루이제 린저 등과 같은 문학책만 읽던 소녀가 사회의 적나라한 현실과 맞닥뜨렸던 순간은 다음처럼 서술된다.
"야학에서 만난 운동권 학생들에게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당시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인간의 삶과 역사, 사회에 대한 이들의 진지한 자세와 통찰력이었다.(…) 갑자기 지혜의 샘물을 먹은 것처럼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삶의 다른 국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난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런 자책감과 동시에 그동안 내가 몸담았던 집단에 대한 깊은 회의가 밀려 왔다.(39~40쪽)
이후 서슬 퍼런 유신 시절 긴급조치를 위반한 친구들의 도피를 돕고 재판을 쫓아다닌 이야기, 수배자였던 '그 선배'와의 뜨거웠던 연애담, 뿌려 보지도 못한 유인물 때문에 관악경찰서에서 끌려가 겪은 야만의 이야기들이 담담하면서도 진솔한 문체에 담겼다.
"타인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보다는 옳은 일은 한다는 허영심에 들떠 이리저리 부유하던 날들. 나는 그 시절의 내가 세상을 바꾸는 데에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시절이 나 자신을 변화시킨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 젊은 날을 관통했던 그 모든 방황과 열정과 가슴앓이는 나 자신이 자유로운 인간으로 우뚝 서기 위한 지난한 자아실현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407쪽)
삼인 펴냄. 408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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