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미투' 발생한 학교 학칙 보니…속옷·양말 색까지 규제

입력 2018-07-29 07:11  

'스쿨미투' 발생한 학교 학칙 보니…속옷·양말 색까지 규제
"엄한 학칙 탓에 교사에 이의제기 어려워"…개선 목소리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상의 안에 속살이 비치지 않도록 속옷을 입되, 반드시 흰색 속옷을 입는다.", "단발머리 길이는 귀밑 10㎝ 이하로 한다."
교사의 성폭력에 학생들이 쉽게 저항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이러한 '엄격하고 세세한' 교칙이다.
29일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 따르면 센터는 올해 스쿨미투가 발생했던 학교들 학칙을 조사한 뒤 A여중과 B여고, C여고 등에 학칙개정을 권고했다.
이 가운데 A여중은 교육청 컨설팅을 받아 학칙개정을 완료했다.
A여중 옛 학칙에는 '여름에는 교복 안에 흰색·연분홍색·베이지색 등 속옷과 속치마(속바지)를 착용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겉에서 보이지 않는 속옷 색까지 학칙으로 제한해놓은 것이다.
해당 규정은 '그간 속옷을 지적·적발한 적 없고 학부모 관심과 지도로 충분히 지켜질 수 있는 항목'이라는 이유로 새 학칙에선 삭제됐다.
겨울 교복을 입을 때 신을 수 있는 양말은 색이 '검은색·회색·남색계열'이어야 한다는 규정도 없어졌다. 형광 현란한 무늬 가방은 학교에 메고 올 수 없다는 규정도 사라졌다.
바뀌지 않은 부분도 있다.
동복 양말 색상제한이 없어진 대신 '화려한 색'은 안 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또 단발머리 시 길이가 '귀밑 10㎝ 이하'여야 한다는 규정은 '학부모와 학생이 A여중을 선택하는 이유가 단정한 용모·생활이며 두발 규정을 변경하면 교복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지됐다.
B여고는 '학생생활규정' 아래 '용의 복장 세부규정'을 둘 정도로 규정이 복잡하고 세세했다. 예를 들어 겨울에 셔츠 대신 입을 수 있는 폴라티는 '검은색·회색·흰색·갈색' 중 하나여야 하며 무늬가 있거나 목이 늘어져 있어선 안 됐다.
이 학교 생활규정에는 '각종 출입문을 여닫을 때 큰 소리가 안 나게 주의한다'든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조회·종례 시 지시·전달사항을 기록하는 습관을 기른다' 등 도덕책에나 나올 법한 규정도 있었다.
C여고 학생생활규정도 A여중이나 B여고와 비슷했다. 상의 안 속옷은 흰색만, 블라우스 위에 입는 카디건은 학교가 지정한 것만 입어야 했다. 특히 학교 측 '공식요청'이 있으면 카디건 대신 재킷을 입어야 한다는 규정도 있었다.
윤명화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옹호관은 "(스쿨미투가 발생한 학교) 학칙을 보면 내용이 딱딱하고 복장 등을 세세하게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한 학교 학생들은 실제 '학칙이 엄격하다 보니 교사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생각하기 어려웠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이에 반복되는 교사 성폭력을 막기 위해 엄한 처벌과 함께 과도하게 세세하고 엄격한 학칙을 손봐 수직적인 학교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교사가 가해자고 학생이 피해자인 성폭력을 폭로한 스쿨미투는 올해 들어 이달 9일까지 교육청에 접수된 것만 21건에 달한다.
아직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피해를 신고하기 쉽지 않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실제 교사 성폭력 사례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jylee2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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