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백로 터전 또 사라지나…청주 서식지 주변 대규모 개발

입력 2018-07-29 09:43  

도심 백로 터전 또 사라지나…청주 서식지 주변 대규모 개발
청주테크노폴리스 개발하면 인근 송절동 서식지 악취·소음 민원 불보듯
서식지 없애는 수순 밟게 돼…환경단체 "개발 말고 생태공원 만들자"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울창한 숲 위를 날아다니는 수백 마리의 백로떼는 장관이다. 홀로 하천에 내려앉아 먹이를 찾는 모습도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런 백로떼가 도심에 둥지를 틀면 사정은 달라진다. 인근 주택이나 차량에 배설물이 쌓이기 일쑤이고 수백 마리가 울어대면서 발생하는 소음에 악취까지 겹치면 주민 민원이 빗발친다.
솔밭이 우거진 청주 흥덕구 송절동 일대에는 8천㎡에 달하는 백로 서식지가 있다. 숲이 우거졌고 미호천으로 흘러드는 무심천 하류에 인접한 곳인 데다 천적이 없고 먹이 활동이 쉬운 곳이다.
이곳에서 서식하는 백로는 매년 3∼5월에 날아들어 여름을 난 뒤 9∼10월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날아간다. 텃새화돼 사철을 이곳에서 서식하는 백로도 있다.
개체 수가 많을 때는 1천여 마리에 달하는 이곳 백로가 한꺼번에 날아오를 때는 그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충북도는 2001년 이 일대를 꼭 가봐야 할 충북의 자연환경명소 100선으로 지정했고, 청주시는 2010년 6월 송절동에 백로 서식을 알리는 안내판을 세웠다.
그러나 이 일대 산업단지 확장이 추진되면서 백로 서식지가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청주테크노폴리스주식회사(이하 청주TP)는 송절동 일대 산업단지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확장이 마무리되면 370만8천㎡ 규모의 산단이 생긴다. 지금의 175만9천㎡에서 산단 규모가 2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청주TP는 지구 확장 인허가가 나는 대로 토지 보상에 착수해 내년 하반기나 늦어도 2020년 상반기에는 첫 삽을 뜰 계획이다.
새로 조성되는 산단에 들어설 아파트와 단독주택, 학교가 이 백로 서식지를 유(U)자 형태로 둘러싸는 형태가 된다.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고 학교가 개교하면 백로 서식지로 인해 주민 불만이 터져 나올 수 있다.
이곳의 백로는 청주TP 개발이 시작된 이후 서식지를 2차례 옮겼는데, 그 과정에서도 각종 민원이 빗발쳤다.
이 일대 공사가 본격화되면서 소음에 먼지까지 발생해 서식환경이 나빠진 2012년 청주시 서원구 수곡동 청주남중 인근 잠두봉으로 날아들기 시작해 2015년 봄부터 개체수가 급격히 늘었다.
악취와 소음으로 학생들이 수업에 지장을 받자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섰고, 결국 청주시는 그해 9월 잠두봉의 소나무 120그루를 베어버려 백로 서식지를 없앴다.
백로떼는 이듬해 봄 잠두봉에서 1㎞가량 떨어진 서원구 모충동 서원대 여학생 기숙사 인근 숲에 둥지를 틀었다.
이곳에서도 개체 수가 800∼1천여 마리에 달하면서 기숙사 학생들과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여름에 창문도 열지 못하는 등 생활에 큰 불편을 겪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청주시는 또다시 이 숲을 간벌해 서식지를 없앴고, 터전을 잃은 백로떼는 지난해부터 송절동의 원래 서식지에 다시 둥지를 틀었다.
내년 하반기 청주TP 확장 공사가 시작되면 백로떼는 2012년 때처럼 먹이가 풍부한 무심천이 흐르는 도심으로 서식지를 옮길 수 있다.

터전을 옮기지 않고 송절동에 서식한다면 향후 입주할 아파트·단독주택 주민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또다시 수목 간벌을 통해 백로 서식지를 없애는 일이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다.
도심에 서식하는 한 백로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키 어려운 것이다.
송절동 일대를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은 어렵다. 이곳에서 7㎞ 떨어진 곳에 청주국제공항이 있어 현행법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백로 서식지와 맞붙은 청주TP 아파트·단독주택 예정지를 개발하지 말고 공원으로 지정,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녹색청주협의회 환경안전위원회(위원장 송태호)는 지난 17일 송절동 현장을 방문, 백로 서식지를 둘러봤다.
이들은 단독주택 택지로 계획된 백로 서식지 앞 논밭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하면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휴식 공간으로, 학생들의 생태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전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정에도 백로 서식지가 있다. KAIST는 새끼가 수로에 빠지지 않도록 그물을 쳐 주고 배설물에서 냄새가 나지 않도록 소독약을 뿌리며 함께 공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송태호 위원장은 "청주시가 꿈꾸는 생명문화도시는 동식물과 사람이 함께 공존하는 녹색 도시일 텐데 오히려 백로 서식지를 파괴하면서 다른 곳으로 쫓아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공존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k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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