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작물 닥치는대로 습격…복숭아·고구마 등 피해 급증
밤잠 설치며 순찰 돌아도 허사…농민들 "속 새카맣게 타"
(청주=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옥천군 옥천읍 삼청리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손희옥(59·여)씨는 요즘 자고 나면 엉망으로 변하는 복숭아밭을 보면서 울화가 치민다.
다음 주 수확 예정인 황도 나무들이 폭격이라도 맞은 듯이 갈기갈기 찢기거나 부러지고, 주렁주렁 매달렸던 복숭아는 온데간데없이 열매를 싸맸던 빈 봉지만 바닥에 나뒹굴기 때문이다.
그의 밭이 멧돼지 습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열흘 전부터다.
처음에는 밭 가장자리의 키 작은 나무부터 입을 대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제집 안방처럼 밭 전체를 휘젓고 다니면서 말썽을 부린다.
그러는 사이 3천여㎡의 밭은 멧돼지 먹이터가 됐고, 7년 넘게 공들여 키운 복숭아나무는 볼썽사나운 몰골로 변해가는 중이다.
손 씨는 "복숭아 맛에 반한 멧돼지들이 높은 가지에 매달린 열매를 따기 위해 나무를 부러뜨리거나 뿌리를 뽑아 못 쓰게 만든다"며 "밤잠을 설치면서 순찰을 돌지만, 신출귀몰하는 멧돼지떼 횡포를 막을 도리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인근 곽모(72)씨의 고구마밭도 밤마다 출몰하는 멧돼지로 인해 엉망진창이 됐다.
600여㎡의 밭은 쟁기로 갈아엎은 듯이 허연 속살을 드러냈고, 채 영글지 않은 고구마는 뿌리가 뽑히거나 넝쿨이 끊겨 성한 게 별로 없다.
곽 씨는 "야생동물 접근을 막기 위해 밭 주변에 비닐 끈과 차광망 등으로 울타리를 쳐놨지만, 멧돼지한테는 무용지물"이라며 "군청에서 보내준 엽사들이 현장을 둘러봤지만, 아직 포획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충북지역 산간 농경지에 멧돼지·고라니 등 야생동물이 설치고 있다.
오밀조밀하게 몰려 단맛까지 풍기는 농작물의 유혹을 쉽사리 뿌리치지 못해서다.
숨이 턱턱 막히는 찜통더위에 굽어진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정성 들여 키운 농작물을 야생동물 먹이로 내놔야 하는 농민들은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간다.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밭둑에 깡통을 매달고 라디오를 틀거나 심지어 모닥불까지 피워 인기척을 내지만, 한두 차례 농경지를 넘나들면서 학습효과가 붙은 야생동물 습격을 막아내지 못한다.
올해 7월까지 옥천군에 접수된 농작물 피해신고는 264건이다. 이중 절반이 넘는 143건은 농작물이 열매 맺기 시작한 7월 한 달 동안 집중됐다.
옥수수, 고구마, 콩, 참깨 같은 밭작물은 물론이고, 복숭아, 포도 등 과수와 한창 자라고 있는 벼 등이 표적이 됐다.
농민들은 "사상 최악의 폭염은 그럭저럭 견딜만해도, 수확을 코앞에 둔 농사를 망치는 것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일선 시·군은 농사철이 되면 유해 야생동물 구제단을 조직해 농경지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멧돼지·고라니 소탕에 나선다.
옥천군에서만 올해 멧돼지 140마리와 고라니 2천379마리가 이들에게 붙잡혔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을 비웃듯이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산림이 우거지고 천적도 없다 보니 멧돼지·고라니의 서식밀도가 해마다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충북지역 농작물 피해 면적은 169만6천㎡로 전년(97만4천㎡)보다 74.2% 늘었다.
시·군청에서 현지 확인을 거쳐 보상해준 금액도 8억2천200만원으로 전년의 4억7천200만원 보다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충북도 관계자는 "야생동물 개체수가 늘면서 농작물 피해와 이로 인한 보상금이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라며 "전기 울타리 설치 등 피해예방 시설물 설치를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는 올해 9억2천만원을 들여 전기 울타리와 경음기, 방조망 설치 사업 등을 추진한다. 이 사업은 60%를 국비와 지방비로 보조하고, 농가는 40%만 부담한다.
bgi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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