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 한달] ① 자리잡는 '워라밸'…일부 초과노동 여전

입력 2018-07-31 14:01   수정 2018-07-31 14:41

[주52시간 한달] ① 자리잡는 '워라밸'…일부 초과노동 여전
"PC 오프제 등으로 '저녁이 있는 삶' 가능" 직장인들 대체로 만족
일부선 "근무시간 줄어도 업무량은 똑같아"…출·퇴근 허위기재 등 꼼수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분위기가 확실히 바뀌었죠. 오후 6시에 '칼퇴근'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아요.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오후 7시에 자리에서 일어나면 상사로부터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는 말을 들어야 했는데 말이죠."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됨에 따라 직장인들의 삶도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제도 시행 한 달을 맞는 31일 상당수 직장인은 근무시간 단축으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이 가능해졌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다만 중소기업이나 일부 업종의 경우 업무 분담이나 대체 인력 투입 없이 섣불리 제도가 시행돼 업무 처리에 애를 먹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 PC 오프제 등 도입…"소득 줄었지만 여가 늘어 좋아"
전자 분야 대기업에서 6년째 근무하는 이모(30)씨는 "직원들이 각자 자신의 근무시간을 모니터링해서 주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회사에서 시스템을 개편했고, 가급적 근무시간 안에 업무를 처리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 씨는 "늦게까지 회사에 남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말 출근을 지양하라는 공문이 내려오기도 했다"며 "여가가 늘어난 만큼 주말에 영어 공부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대기업 계열사의 재무 관련 업무를 맡은 7년차 직장인 주모(35)씨는 "저녁이 있는 삶이 확실히 실현되고 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주씨는 "제도 시행 전에는 매일같이 7시 30분께 출근해서 오후 9시 넘도록 일하는 게 일상이었다"며 "간혹 예상치 못한 초과근무를 할 때 이를 결재받기가 쉽지는 않아 실제 근무시간과 시스템상 근무시간의 괴리가 있기는 해도 출퇴근 시간이 눈에 띄게 달라져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주씨는 "야근비 등이 없어지면서 소득이 줄어든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면서도 "퇴근 후 학원에 다니면서 자기계발을 할 수 있으니 잠재적인 몸값을 높일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식품 대기업에 다니는 강모(35)씨는 "회사에서 주52시간제를 대체로 잘 지키고 있다"며 "덕분에 운동도 하고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씨는 "가끔은 상사가 '근무시간으로 넣지 말고 조금만 더 일해줄 수 없겠느냐'는 식으로 업무를 맡겨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며 "그럴 땐 그냥 제도 시행 전 마구잡이로 야근했을 때를 생각하면서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전했다.

◇ "업무량은 줄지 않아 애로…인력 충원 필요" 목소리도
하지만 업무량 축소나 대체 인력 투입 등 제반 사항 등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채 제도가 섣불리 도입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중은행에 다니는 전모(38)씨는 "회사는 근무 종료 시간이 되면 PC가 자동으로 꺼지는 PC 오프제를 도입하는 등 주52시간제 준수를 위해 나름 노력을 하고 있다"며 "주52시간제 도입 자체는 직장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큰 변화"라고 평가했다.
다만 전씨는 근무시간 단축으로 인한 애로사항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근무시간이 줄었다고 해서 개개인에게 할당된 업무량이 줄어든 것은 아니라는 게 문제"며 "때로 업무가 몰린 상황에서 PC가 강제로 종료되면 난감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전씨는 "시간에 쫓겨 일하지 않도록 채용 인원을 늘려 업무를 분담해야 주52시간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3년차 대기업 사원 정모(31)씨는 직장문화가 바뀐 제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퇴근 시간이 돼도 팀장이 퇴근하지 않으니, 팀 선배들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연스럽게 초과근무 결재를 올리고 예전처럼 저녁 7∼8시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어떤 선배들은 주당 12시간 넘게 초과근무가 발생한 것 같은데 이를 제대로 기록했는지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곽모(31)씨는 "공식적인 근무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지만 업무량을 감당할 수 없어 여전히 오전 8시에 출근해 업무를 처리한다"며 "초과근무가 발생하지 않도록 엄격히 관리하라는 회사 지침 탓에 출ㆍ퇴근 시간을 가짜로 쓰고 야근시간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털어놨다.
kih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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