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서울광장서 노제 엄수…아들 묻힌 모란공원에 안장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아버님, 막내(박종철)가 고생하셨다고, 고맙다고 이제 좀 쉬시라고 그리 말하든교. 막내 보니까 좋은가요."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아들 박종철 열사에 이어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평생을 바친 박정기 씨의 노제(路祭)가 3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폭염 속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엄수됐다.
박 씨는 지난해 초 척추 골절로 수술을 받고 부산 수영구 남천동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가 최근 기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28일 오전 5시 48분께 향년 89세로 생을 마감했다.
유족과 장례위원들은 고인의 영정을 들고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사랑방인 서울 동대문구 '한울삶'에 잠시 들른 뒤 노제 장소인 서울광장을 찾았다.
영결식과 마찬가지로 이날 노제에는 고인이 아들을 대신해 민주열사로 31년간을 살아온 여정을 담아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슬하에 종부, 은숙, 종철 3남매를 둔 박 씨는 공무원으로 평범한 삶을 살았으나 막내인 박 열사가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하다가 목숨을 잃은 뒤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남은 생을 바쳤다.
이날 노제를 위해 마련된 무대에는 '종철아! 잘 가 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아부지, 많이 힘드셨지예… 인쟈부터 막내가 잘 모시겠습니더'라는 현수막 2개가 붙었다.
첫 번째 현수막은 박 열사가 숨진 뒤 박 씨가 한 말로, 1987년 1월 23일 고려대 학생 연합 집회 때 실제로 쓰인 현수막을 본떠 만들었다. 아버지로서 애끓는 속내를 표현한 이 말은 같은 해 6월 항쟁 기폭제의 하나로 작용했다.
두 번째 현수막은 박종철 열사의 대학 1년 후배인 전상훈 이지스커뮤니케이션즈 대표가 하늘에서 아버지를 뵐 박 열사의 심정을 빗대 지은 것이다.
노제에 앞서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시민 박혜원(52) 씨는 "박종철, 이한열 열사 두 분과 함께 대학 시절을 보낸 데다 박정기 선생님의 큰며느리와 직장 동료라는 인연이 있다"며 "박 열사의 죽음으로 아버님의 가정이 무너졌었는데 이렇게 가시는 길이라도 시민장을 치를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노제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김두관·원혜영 의원,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명환 위원장은 조사(弔詞)를 통해 "박정기 아버님은 박종철 열사가 살고 싶었던, 살고자 했던 수백 수천의 날을 아들을 가슴에 안고 묵묵히 살아내셨다"며 "'아직도 다하지 못했다'고 가시는 길에 남기신 그 말씀, 이제 남은 우리의 할 일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진 조사에서 박원순 시장은 "아버님은 먼저 떠나보낸 아들의 동지가 돼,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린 모든 이들의 아비가 돼 아들이 차마 못 본 세상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다"며 "그토록 보고 싶어 하시던 아들을 다시 만난다면 '자랑스러운 내 새끼 덕분에 세상 참 좋아졌다'고 꼭 안아주시라"며 고인의 평안한 영면을 빌었다.
박 열사의 형 종부(59) 씨는 유족 대표로 무대에 올라 "종철이는 추위에 떠는 노숙인을 보고 망설임 없이 새로 산 자기 파카를 벗어주던 착한 학생이었다"며 "아버지께서는 이런 착한 아들 종철이를 앗아간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맞서 부대끼다 가셨다"고 기억했다.
그는 이어 "아버님, 막내 보셨는교. 막내가 뭐라카던교. 고생하셨다고 고맙다고 이제 좀 쉬시라고 그리 말하든교. 막내 보니까 좋은가요"라고 하늘을 향해 말을 걸기도 했다.
시민들의 추모 속에 떠난 고인은 이날 오후 5시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안치돼 아들 박 열사와 나란히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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