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곳 중 20곳 기각…검찰 "요건 못 갖췄다면 외교부는 왜 영장발부했나"
법원, 검찰 비판에 격분…"법원 구성원이라고 예외로 안 해"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이지헌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법원행정처에 대한 법원의 영장 기각에 연일 불만을 터뜨리자 법원도 발끈하고 나섰다. 검찰이 영장 기각에 불만을 드러내기 전에 영장 발부 요건부터 갖춰서 청구하라는 게 법원의 입장이다.
검찰은 이에 발부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면 이 사건의 참고인에 불과한 외교부는 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느냐며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이번 수사가 본격화한 이후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은 90% 이상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2일 "최근 기각된 법원 구성원에 대한 영장은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된 것"이라며 "사회 일각에서 '제 식구 감싸기' 행태라고 비판하는 것은 오해"라고 말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달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임 전 차장에 대한 영장만 발부했다.
검찰이 혐의 소명을 보강해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재청구했으나 역시 기각됐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 등이 공모했다는 점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법원은 법원행정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행정처의 임의제출 가능성이나 공무상 비밀 침해 우려 등을 이유로 모두 내주지 않았다.
검찰은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될 때마다 "납득할 수 없다"며 강한 불만을 표해왔다. 일각에서도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나 법원 관계자는 이날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기 위해서는 청구서에 의해 피의사실이 특정되고, 그 자체로 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피의사실에 대한 소명 ▲ 대상자와 장소 등 강제처분 범위의 필요성·상당성 등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그 판단 기준으로 임의수사 원칙과 최소 침해의 원칙, 법익 균형의 원칙 등을 고려하게 된다"면서 "영장이 기각됐다는 것은 이런 요건이 하나 이상 흠결(부족)됐다는 걸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영장 심사에서 이런 요건에 대한 심사 외에 다른 어떤 고려 사항도 있을 수 없다"며 "법원 구성원에 대한 영장이라고 해서 예외적으로 취급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법원은 부산의 한 건설업자와 유착해 형사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문모 전 판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며 "별건 수사로 볼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는데 법원 관계자는 이에 대한 설명도 내놨다. 문 전 판사의 사무실 압수수색이 필요하면 그에 해당하는 피의자와 피의사실을 구체적으로 특정해서 영장을 청구하는 게 적절하다는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추후 영장 청구서와 소명자료의 내용이 가감 없이 공개되면 최근의 영장 심사가 적정했는지가 객관적으로 평가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아울러 검찰이 '법원의 수사 협조'를 무조건적인 '영장 발부'로 받아들이는 것에도 유감을 표했다.
그는 "영장 심사는 수사에 대한 협조 여부와 연계시킬 수 없는 별개의 문제"라며 "수사에 협조할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최근의 기각 결정을 비판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YNAPHOTO path='PYH2018072103390001300_P2.jpg' id='PYH20180721033900013' title='검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자택 압수수색' caption='지난 7월 21일 오후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 서울 서초구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자택을 압수수색한 뒤 압수품을 들고 건물을 나서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사관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이 관계자는 "발부 요건이 갖춰지는 한 법원에 대한 영장이라 해도 예외 없이 발부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최근의 영장 기각과 상관없이 수사에 대한 협조는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계속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법원의 이런 반박에 즉각 맞불을 놨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 말대로 압수수색 영장의 요건이 충족 안 됐으면 현 단계에서 이 사건 참고인에 불과한 외교부의 영장이 나올 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영장 요건이 충분했으므로 피의자도 아닌 참고인에 대한 영장이 발부되지 않았겠나"라며 "참고인 영장은 발부됐는데 범죄 혐의자에 대한 영장이 모두 기각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달 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강제수사에 본격 돌입한 이후 네 차례에 걸쳐 22곳의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임 전 차장의 주거지·사무실과 외교부 등 2곳의 영장만 발부돼 기각률이 91%에 달한다.
법원이 통상 압수수색 영장의 90% 안팎을 발부하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할 수 없는 결과라는 게 검찰 입장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외교부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된 걸 보면 임의제출 가능성이나 공무상 비밀 등의 법원이 제시하는 기준을 압수수색 대상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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