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언론 "12년간 뇌물 심부름 행적 낱낱이 기록"
뇌물 액수, 돈가방 무게, 전달 주소 등 깨알같이 적어
(서울=연합뉴스) 이동경 기자 = 전 정권의 고위층이 연루된 부정부패 사건으로 떠들썩한 아르헨티나에서 전 고위 공무원의 운전기사가 12년간 수백억원대의 뇌물 심부름을 한 기록을 낱낱이 적은 노트가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3일 현지 신문인 라 나시온과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노트는 기획부 고위 공무원인 로베르토 바라타의 운전기사를 했던 오스카르 센테노가 2003년부터 2015년까지 자신이 전달한 뇌물의 상세 내용을 적어둔 것이다.
이 기간은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부부가 '좌파 부부 대통령'으로서 아르헨티나 정권의 바통을 주고받은 시절과 일치한다.
바라타는 현직 상원의원인 페르난데스가 대통령 시절 국가 공공 재정을 주무른 '정권의 실세'인 홀리오 데 비도 당시 기획장관 밑에서 일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센테노의 노트에는 뇌물을 건넨 시간, 액수를 포함해 뇌물을 배달한 주소와 심지어 돈 가방의 무게까지 적혀있다고 라 나시온은 보도했다.
또 센테노는 자신의 상관이 얼마나 자주 헬스를 하러 다녔는지에 대해 적어두기도 했다.
센테노의 노트에 기록된 뇌물의 액수를 합하면 약 5천600만달러(약 631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추정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재판을 맡은 클라우디오 보나디오 연방 판사는 부패 네트워크의 뇌물 규모가 1억6천만달러(약 1천805억원)에 달할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센테노의 노트 중 8권은 센테노가 바라타의 운전기사를 맡고 있던 올해 초 라 나시온이 단독 입수를 했고, 라 나시온은 이 노트를 사법당국에 넘겨주기 전에 몇 달간 은밀한 기획 취재를 했다고 BBC방송은 보도했다.
사법당국에 센테노의 노트가 건너간 뒤 센테노도 체포돼 수사당국에 협조하는 가운데, 뇌물과 관련된 사업가 등 10여 명이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체포된 인사 가운데 건설업체 렉사(lecsa)의 전 최고경영자 하비에르 산체스 카바예로와 파타고니아 수력발전 건설사업을 했던 엘렉트로인헤니에리아의 부회장 헤라르도 페레이라, 호르헤 기예르모 네이라도 포함됐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데 비도 전 장관을 실세로 거느렸던 페르난데스 측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보나디오 판사는 지난 1일 페르난데스 재임 시절의 공무원 등 10명에 대해 공공입찰 과정의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하면서 페르난데스에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했다.
퇴임후 상원의원에 당선돼 면책특권을 부여받은 페르난데스에 대해 검찰은 횡령과 부정축재 등 각종 비리혐의와 관련한 조사를 벌이고 있으나 결정적인 기소 등 '한 방'은 나오지 않고 있다.
페르난데스는 2015년 11월 당선된 중도우파 성향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 정부가 경제난으로부터 국민의 관심을 돌리고 야권을 탄압하기 위해 사법체제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데 비도도 장관직에서 퇴임한 뒤 하원의원을 맡았으나 작년 10월 의회에서 불체포 특권이 박탈된 뒤 횡령 등 부패혐의로 체포됐다.
데 비도는 2010년 한국을 방문해 '한국형 원전 수출'과 관련해 지식경제부와 원전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hope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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