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짠맛 등 '맛의 5대 요소' 그래프로 표시
"'맛 주문생산시대' 올 수도"…과일 생산, 유통, 소비 구조 변화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맛있게 잘 익은 것 같아 샀는데 집에 와서 먹어보니 덜 익은 거였다." 앞으로는 이런 낭패를 겪는 일이 없어질지 모른다.
상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손으로 만져볼 수 없게 포장된 과일이나 야채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등 "맛의 5대 요소"를 그래프로 보여주는 앱이 일본에 등장했다. 눈으로만 봐서는 알 수 없는 맛을 먹어보기 전에 미리 알 수 있게 해주는 앱이다.
3일 NHK에 따르면 지난 6월 말의 토요일, 후쿠시마(福島)현에 있는 한 대형 슈퍼 토마토 매장에 "맛이 보이는 앱 실험중"이라는 대형 게시물이 내걸렸다. 앱이 내장된 태블릿 단말기로 사진을 찍어 맛을 알려주는 앱을 구매 고객들이 체험해 보는 행사였다. 앱을 시험해본 고객들은 "야채 매장에서 고민하지 않아도 돼 아주 좋았다", "맛을 미리 알 수 있어 메뉴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웠다"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육안으로는 똑같아 보이는 토마토의 맛 차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벤처기업 마쿠타어메니티와 함께 앱을 개발한 야마가타(山形)대학의 노다 히로유키(野田博行) 교수는 육안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야채의 색깔을 분석하면 미묘한 맛의 차이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겉보기에 똑같이 빨간 토마토라도 그 속에는 청색이나 녹색 등이 포함돼 있다. 이 점에 착안해 야채를 촬영한 영상을 특수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적, 청, 녹 3색으로 분해, 각각의 색의 농담(濃淡)을 분석한다. 이런 '색 데이터'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을 측정한 '맛 데이터'를 조합해 특정 색이 어떤 맛을 내는지, 색과 맛의 관계를 찾아냈다.
그동안 축적한 연구 데이터 3만여건을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해석, 오이, 포도 등의 야채와 과일 16종류의 맛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앱을 이용해 맛을 판별할 수 있는 과일과 야채는 오이, 포도, 딸기, 사과, 아스파라거스, 배추, 체리, 토마토, 미니토마토, 고마쓰나, 시금치, 순무, 브로콜리, 양배추, 상추, 당근 등이다.
노다 교수는 "앱을 이용하면 숙련된 전문가의 '감별력'을 일반인들도 구사할 수 있다. 가격결정의 근거로 앱이 사용될 가능성도 있어 생산, 유통, 소비 구조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앱은 업무용으로 올봄부터 실용화돼 생산현장 등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야마가타현에서 체리를 재배하는 다카하시(35)는 고급품종을 출하하기 위해 재배와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다카하시 농장에서 재배한 체리는 500g에 1만 엔(약 10만 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 상자에 포장할 때 엄격한 선별작업을 거치지만 맛이 떨어지는 체리가 몇알 들어가는 건 원천적으로 어쩔 수 없다. 육안으로 봐서는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맛이 떨어지는 체리가 섞여 들어가면 고급품 농장의 신용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맛을 보거나 출하할 체리를 손가락 등으로 건드리는 건 품질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에 할 수 없다. 고민하던 차에 지인에게서 앱 이야기를 듣고 당장 도입했다. 태블릿 단말기로 사진을 찍어 한알 한알의 맛을 파악, 선과를 진행하기 때문에 요즘은 품질에 자신을 갖게 됐다.
다카하시는 장차 앱을 이용한 측정결과를 "맛 보증서"로 삼아 품질의 우수성을 거래처에 알릴 생각이다. 그는 "막연하던 체리맛을 당도가 높다는 걸 보증할 수 있다거나 수치나 그래프화해 생산자와 거래처가 서로 확인할 수 있다는 건 큰 메리트"라고 말했다.
맛에 대한 기호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앱 개발자인 노다 교수는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에 맞춰 '주문 생산 재배' 시대가 올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앱은 아직은 태양 빛과 형광등 등 빛 가감 정도에 따라 색 판별이 다른 경우도 있어 개발에 참여한 벤처기업은 앞으로 일반인이 스마트폰으로도 이용할 수 있도록 기술보완 연구를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NHK는 "장차 야채나 과일뿐 아니라 육류와 생선의 맛도 눈으로 보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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