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폭력·빈곤 실태 알리려…초대형 록축제 열린 도심부터 컵스 경기장까지 도로 행진
"생명이 레크리에이션보다 중해"…람 이매뉴얼 시장 퇴진 요구
(시카고=연합뉴스) 김 현 통신원 = 미국 3대 도시 시카고의 화려한 고층빌딩숲 이면에서 총기폭력·빈곤에 맞서 살아가는 이들이 큰 길로 나섰다.
2일(현지시간) 시카고 언론에 따르면 시카고 종교·시민단체 리더들과 주민 수백명이 이날 오후 4시부터 도시 북부지역 주요 도로를 따라 행진하며 도시 남부 흑인 저소득층 거주지역의 만성적인 총기폭력과 고질적 빈곤 문제에 관심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미국 최대 록 페스티벌 '롤라팔루자'(Lollapalooza)가 개막한 도심에서부터 미 프로야구(MLB) 시카고 컵스 경기가 열린 리글리필드까지 총 5km를 줄지어 걸으며 "람 이매뉴얼 시장 퇴진", "'두 얼굴의 도시' 이제 그만", "한 도시, 하나의 시카고", "모든 시카고인을 위한 정의" 등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체포될 각오를 하고 시위에 참여했다"면서 "총기폭력 없는 안전한 지역사회, 학교·교육환경 개선, 일자리 마련" 등을 호소했다.
시위를 주도한 그레그 리빙스턴 목사는 "시위대를 부유층이 사는 도시 북부로 이끌고 온 것은 같은 도시 내 남부 주민들이 처한 상황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며 "고통 분담 차원"이라고 말했다.
시위에 참가한 티오 하디먼은 "너무 많은 사람이 총기폭력에 목숨을 잃는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매뉴얼 시장은 이 문제에 대해 관심도 없고, 해결할 능력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매뉴얼 시장은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대 비서실장 출신으로 흑인사회 표심을 공략해 시장에 당선됐으나 '가진 자들만을 위한 정치'로 흑인 저소득층 삶의 조건을 더 열악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리빙스턴 목사는 이매뉴얼 시장을 향해 "아직도 우리를 어리석고, 단순무지하고, 자기혐오에 빠진 존재로 생각하나"라고 물었다.
당국은 시위대 행진 구간 도로를 폐쇄, 퇴근시간 도로 교통이 큰 혼잡을 빚었다.
시위대는 리글리필드 앞에서 컵스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도회를 갖고 해산했다.
리빙스턴 목사는 "경기장 안에 백만장자들이 여러 명 있을 것"이라며 "극단적인 빈부격차는 극복되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전 롤라팔루자에 초청된 유명 가수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롤라팔루자 입장권을 살 경제적인 여유는 커녕 총기폭력과 가난으로 고통받으며 2류 시민 취급을 받는 이들에 대한 연대감 표현 차원에서 공연을 거부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으나, 행사는 일정 변경 없이 진행됐다.
시카고 그랜트파크에서 나흘 일정으로 개막한 2018 롤라팔루자에는 브루노 마스, 더 위켄드, DJ 칼리드, 아틱 멍키스, 포스트 멀론, 릴 우지 버트 등 180여 유명 그룹이 초대됐다.
하지만 시위 주최 측은 "남부에서 아무리 큰 목소리로 울부짖어도 보도하지 않던 주류 언론이 시위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다뤄준 것 것만으로도 성과가 있다"는 반응이다.
경찰은 이날 시위 과정에서 체포된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시카고에서 올들어 지금까지 발생한 총기 사고는 총 1천720건, 살인사건은 총 332건. 이 모든 범죄는 도시 남부와 남서부의 흑인 저소득층 밀집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흑인사회 리더들과 주민들은 지난달 7일에도 도심을 지나는 94번 주간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점령하고 흑인 저소득층 거주지역의 고립과 이 지역에 만연한 총기범죄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며 평화시위를 벌인 바 있다.
chicagor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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