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중 추가제재 안한다던 트럼프, 친서공개 다음날 제재
유해송환·친서외교로 해빙무드 속 북한 반응 주목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미국이 3일(현지시간) 북한 관련 제재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북한 은행 측과 거래한 러시아 은행 1곳, 북한 은행과 연계된 중국과 북한 유령회사 2곳, 러시아에서 금융활동을 한 북한인 1명에 대해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유해송환과 관련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감사의 뜻을 밝히고, 백악관이 북미 정상의 친서 교환 사실을 공개한 지 하루만이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답보상태인 가운데 '선(先)비핵화 - 후(後) 제재 완화' 방침을 재확인하며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인 차원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유화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제재를 무기로 압박의 고삐를 다시 조임으로써 비핵화 협상을 본궤도에 올려놓겠다는 당근과 채찍의 병행 전략인 셈이다.
관련 부처 합동으로 '대북제재 주의보'를 발령한 지 10일 만에 이뤄진 이번 독자제재에는 최근 들어 국제사회의 대북 공동전선에 균열이 감지, 제재가 이완되고 있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우려가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특히 정제유 밀수출 등 중국과 러시아의 제재 이탈 조짐에 경고의 목소리를 내며 제재 이행을 촉구해왔다.
이와 관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을 위해 싱가포르에 도착한 폼페이오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핵무기 제거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있다"며 북한이 비핵화 약속 이행과 아직은 거리가 먼 채로 여러 유엔 안보리 제재를 위반하고 있다고 포문을 열기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리용호 북한 외무상도 참여하는 이번 ARF 참석을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책무'를 환기하는 기회로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의 대북 독자제재는 지난 2월 북핵 개발 자금의 주요 조달 통로로 지목돼온 북한의 해상 무역을 봉쇄하고자 북한과 관련된 무역회사 27곳, 선박 28척, 개인 1명에 대한 무더기 제재에 나선 이래 5개월여 만이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는 11번째 독자제재이다.
지난 2월 제재는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이 방한한 기간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무엇보다 이번 제재 발표는 북한과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추가 제재를 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을 뒤집는 것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1일 김 위원장의 특사로 방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백악관에서 회동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현재 매우 중대한 (시행 중인) 제재가 있고, 준비된 수백 개 제재가 있다"면서도 "준비된 제재를 시행하지 않았고, 시행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북한과 협상이 지속되는 한 새로운 제재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최대 압박'이라는 용어도 일단 거둬들이면서 "내가 이 표현을 다시 사용한다면 협상은 잘되지 않았다는 뜻"이라며 "300개가 넘는 엄청난 (신규 제재) 리스트를 갖고 있지만, 정말로 (북한과 비핵화)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보류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조치는 평양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제거하도록 압박하는 '최대 압박' 전략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라며 "동시에 북한의 불법적 핵 활동을 근절시키기 위해 할 바를 충분히 하지 않는다고 미국이 비난해온 모스크바에 대해서도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제재를 통해 북한을 압박했을 뿐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에도 경고장을 보냈다.
이번 제재 대상인 법인 3곳이 러시아은행과 북한 은행의 유령 회사인 중국, 북한 법인으로 이뤄진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온다.
특히 외국 은행에 대한 제재는 지난 2월 라트비아 ABLV 은행에 이어 5개월 만으로, 러시아은행이 북한 문제로 미국의 제재를 받은 건 이번이 첫 사례이다. 당시 ABLV 은행이 급격한 인출사태로 유동성 위기를 겪은 점에 비춰 은행을 정조준한 이번 제재는 파장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이 제재 위반 사례나 잠재적 새 제재 리스트 등을 축적해 놓고 있다가 시점과 규모를 놓고 저울질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 중국, 러시아 1곳씩 선정한 것 자체가 상징성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을 감안, 제재를 가하면서도 나름대로 수위를 조절했다는 시각도 있다. '사상 최대 규모'였던 지난 2월 제재보다 상징성을 가질 수 있는 선에서 최소화했고,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등이 나서서 의미를 부여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보도자료를 발표하는 방식으로 '로키'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번 제재로 인해 유해송환과 북미정상간 '친서외교'로 돌파구를 찾는 듯 했던 비핵화 협상 국면이 다시 경색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어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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