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하라" 정부 발표에도 시민 불안…"내일이 두렵다"
리알화 가치 폭락에 달러·금 확보하느라 동분서주
수입의존 생활필수품 가격 폭등…계란 작년보다 55%↑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 수도 테헤란도 올해 여름 전 지구적인 이상고온 현상을 피하지 못했다.
한여름 기온이 보통 섭씨 43도 안팎으로 높은 편이지만 올해는 특히 더 더웠다.
이란 기상청은 최근 여름이 시작된 6월22일부터 한 달간 테헤란의 평균 기온이 예년보다 섭씨 2.2도나 높아졌다고 발표했다.
6일(현지시간)에도 테헤란 한낮의 수은주는 섭씨 45도에 가까웠다.
이날 테헤란 시민들은 다른 나라의 대도시 못지않은 폭염 속에서도 엄습하는 불안과 두려움에 서늘한 냉기를 느꼈다.
이튿날부터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다시 부과되는 탓이다.
제재가 부활하기도 전부터 이란의 경제는 얼어붙기 시작할 정도로 그 위력은 이란 국민의 삶을 바짝 압박했다.
미국의 제재로 달러 수입원인 원유 수출이 막히면 '환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불안이 이란 전역을 휩쓸면서 이란 리알화의 가치가 곤두박질쳤다.
리알화 가치가 폭락하자 무역업자들이 수입을 중단했다. 제조업이 부진한 이란에서 수입이 끊긴다는 소식은 물자 부족 사태가 벌어진다는 예고다.
불안해진 이란 시민들은 앞다퉈 안전자산인 달러와 금을 최대한 확보하느라 동분서주했다.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생활필수품의 가격도 폭등했다. 6월 말 기준 계란 가격은 한 해 전보다 55%, 버터는 35%, 오이는 75% 나 올랐다.
이란인들이 쓰는 텔레그램 뉴스 채널엔 5일 "전량 수입하는 펄프 재고가 2개월 치밖에 남지 않았다. 화장지와 A4 용지가 곧 슈퍼마켓에서 떨어질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전파됐다.
테헤란의 한 대형 마트에선 최근 회원들에게 "제재가 시작되면 수입이 중단되는 물품이 있으니 미리 사두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란 정부는 "외화 보유고가 충분하고, 이란 경제는 튼튼해 단합하면 미국의 제재를 이겨낼 수 있다"면서 술렁이는 민심을 진정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서민층의 불안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다.
미국의 제재를 하루 앞둔 6일 오전 테헤란 북부 타즈리시 시장에서 만난 시민 네마티(51) 씨는 "자고 나면 물가가 오른다"면서 "리알화로 월급을 받는 이란 사람들은 환율 급등을 감당해 낼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장을 보던 주부 잠시디(44) 씨도 "정부는 미국의 제재를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하는 데 믿기 어렵다"면서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렵다"고 말했다.
이란 현지 분위기는 그러나 서방 언론의 보도처럼 크게 요동치는 것은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정치 전문 교수는 "이란은 미국의 제재 속에서 40년 가까이 살아왔다"며 "일부 지방에서 시위가 벌어지지만,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정도는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최근 2년간 핵합의 이행으로 제재가 완화된 것이 이란 현대사에선 매우 이례적인 시기였다"면서 "이란인들은 위기에 닥치면 이를 표출하지 않으면서 일단 숨을 죽이고 자신의 가족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집중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이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미국 제재가 7일 복원되면 이란에 어떤 현상이 벌어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한국 상사의 테헤란 지사장은 "본격적인 제재는 11월5일(이란산 원유 제재) 시작되므로 지금부터 석 달간 상황을 지켜보고 철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면서 "한국이 미국에서 제재 유예국으로 인정되면 힘들지만 사업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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