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과제라 하면 영화가 아닐까요"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개인적으로는 모성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는 '여자' 이야기라 생각했습니다."
MBC TV 주말극 '이별이 떠났다'에서 서영희로 열연한 배우 채시라(50)는 이번 작품을 '한 여자의 성장기'로 정의했다.
7일 서울 청담동 한 카페에서 만난 채시라는 드라마가 종영한 데 대해 "24부도 짧게 느껴지는데 20부는 더 빨리 지나갔다. 그런데 그 안에 밀집된 연기의 농도는 짙었기에 시원섭섭하다"고 말했다.
"처음에 캐릭터 느낌을 잡기 위해 소재원 작가님의 원작, 웹소설을 좀 읽었어요. 그런데 대본을 날 것처럼 표현하고 싶어서 끝까지 읽지는 않았어요. 반복적으로 보면서 익숙해지는 게 싫었거든요. 작품을 마친 시점에서 느끼는 건 '여자 대(對) 여자'의 이야기였다는 거예요. 영희도 요즘 시대에 필요한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시대마다 여성상이 다르고 엄마도 조금씩 변하는데, 그런 면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서요."
채시라는 남편의 불륜 후 '살기 위해' 자신을 3년간 집에 가뒀다가 정효(조보아 분)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한 영희의 내면에 대해서도 섬세하게 묘사했다.
채시라는 "처음에는 영희를 이해 못 할 사람도 있겠다 생각했다"면서도 "약자가 돼버린 영희가 누구보다 강하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자신보다 약한 효를 만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 보호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과정이 자연스럽게 와 닿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영희가 3년간 갇혀 살다가 효를 만나면서 사람 간 주고받는 감정을 느껴보지 않았느냐. 그래서 이후에 한 번 더 자신을 가뒀을 때는 길게 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봤자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라며 "누구도 나를 꺼내주지 않으니 스스로 나가서 사람에게 다가가야 했다"고 덧붙였다.
채시라는 마지막에 최불암과 함께한 장면도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최불암은 최종회에 영희 아버지로 특별출연해 작품을 빛냈다.
"21년 전 '미망'에서 할아버지와 손녀로 만났을 때 느낌 그대로였죠. 선생님과 평상에서 대화를 나누던 게 참 좋았어요. 눈물 쏟던 것도 기억나고요. 보자마자 '애들 많이 컸지?' 하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과 설렘, 기쁨이 서로 같았을 거예요. 아침부터 밤까지 종일 함께 있었는데 선생님을 본 것 자체로 정말 좋았어요."
그는 스물세 살 차이 조보아와의 호흡에 대해서는 "호흡은 많이 맞춰보면 맞춰볼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먼저 보아에게 제안을 많이 했고, 보아가 그걸 진심으로 좋아해 줘서 장면마다 완성도도 높아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별이 떠났다'는 '착하지 않은 여자들' 이후 채시라가 3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작품이었다.
그는 "긴장은 웬만하면 안 하려 한다. 모든 게 힘을 빼야 잘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영희는 모든 감정을 가진 캐릭터라 더 그랬다"며 "이번에 슬립도 입어보고 담배도 피워보고 그동안 보여드리지 않은 모습도 많이 보여드렸다. 정웅인 씨가 '깜놀'(깜짝 놀람)했다고 하더라"고 웃었다.
그는 그러면서 "'힐링 드라마'로 기억되길 바랐는데 그 부분은 좀 이루지 않았나 싶다"며 "남편(김태욱)이 웬만하면 칭찬을 잘 안 한다. '괘안네'(괜찮네) 하면 아주 좋은 건데 이번에 그랬다"고 덧붙였다.
1984년 CF 모델로 데뷔한 채시라는 하이틴 스타로 인기를 누리다가 '여명의 눈동자'(1991~1992) 속 비운의 여인 윤여옥 역을 만나면서 배우로서 완전한 반열에 올랐다. 이후 무수히 많은 작품에서 부잣집 아가씨부터 당당한 워킹걸, 팜므파탈, 사극 속 카리스마 있는 여장부까지 카멜레온처럼 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채시라는 "'여명의 눈동자'와 더불어 '서울의 달'이 저 채시라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인 걸 보면 참 좋은 작품, 참 좋은 캐릭터였던 것 같다. 최근까지 재방송하고 봐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배우로서는 참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제 제게 남은 과제라 하면 영화가 아닐까 싶다"며 "'화양연화' 같은 시대극도, 우리 것을 잘 표현하는 사극도 멋있을 것 같다. 영화에서 저를 보고 싶다고 해주시는 분도 많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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