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감세 등 핵심공약 현실화 위한 주도권 다툼 거세질 듯"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지난 6월 출범한 서유럽 최초의 포퓰리즘 정권인 이탈리아 연립정부의 두 정당이 난민 정책부터 대규모 인프라 건설에 이르기까지 주요 정책에서 큰 간극을 드러내며 '불안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다.
7일(현지시간) 일 메사제로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연정 구성 전부터 지지 기반이나, 당의 핵심 철학이 상이했던 '오성운동'과 '동맹'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를 실감하며, 주요 의사 결정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은 지난 3월 총선에서 33%에 육박하는 표를 얻으며 제1당으로 약진했고, 극우정당 동맹은 반(反)난민, 반이슬람을 앞세워 17.4%를 득표해 우파 최대 정당으로 급부상했다. 이들이 극적으로 연정 구성에 합의함에 따라, 이탈리아에는 총선 이후 약 3개월 만에 새 정부가 들어선 바 있다.
최근 두 정당은 특히 알프스 산맥을 관통해 이탈리아 제4의 도시 토리노와 프랑스 남부 리옹을 잇는 고속열차(TAV)와 아드리아해횡단가스관(TAP) 등 대규모 인프라 건설 사업을 놓고 두드러진 이견을 노출하며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TAP는 카스피해의 아제르바이잔 가스전에서부터 터키, 그리스, 알바니아를 거쳐 이탈리아로 연결되는 총연장 3천500㎞의 남방가스(SGC)의 말단 구간이다.
환경을 중시하는 오성운동은 환경 훼손 우려와 지역주민들의 반발, 사업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의구심 등을 이유로 두 사업을 전면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산업이 발달한 북부를 핵심 지지 기반으로 하는 동맹은 국제사회와 연계돼 이뤄지고 있는 두 사업에서 이탈리아가 발을 뺄 경우 거액의 벌금을 물어야 하는 등 실질적인 손해가 예상된다며 사업 강행이 합리적이라고 맞서고 있다.
두 정당은 지난 주 의회에서 임명 동의안이 부결된 공영방송 RAI 사장 내정자 마르첼로 포아의 거취를 놓고도 신경전을 벌였다.
그를 천거한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동맹 대표는 동의안 부결에도 불구하고, 포아를 계속 RAI 사장으로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천명했으나, 루이지 디 마이오 부총리 겸 오성운동 대표는 정당 간 합의 없이는 곤란하다고 밝히며 살비니와 대립했다.
내무장관을 맡고 있는 살비니 부총리가 취임 초부터 외국 비정부기구(NGO) 난민구조선의 이탈리아 입항을 저지하는 등 반난민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오성운동 주요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오성운동의 중진 정치인이자 하원의장인 로베르토 피코는 최근 공개적으로 살비니의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피코 의장은 지난 달 30일 지중해에서 이탈리아 상선에 의해 구조된 난민 약 350명이 리비아 해안경비대에 인계돼 국제법 위반 논란이 일자, 이를 일축한 살비니 장관과는 달리 "리비아는 안전한 곳이 아니며,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난민들이 거기에 남겨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난민구조선 입항을 거부한 살비니 장관의 결정과 관련해서도 "나는 항구를 닫길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성과 (따뜻한) 마음으로 난민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새 정부 출범 이후 소수 인종을 겨냥한 범죄가 크게 늘고 있는 가운데, 오성운동의 또 다른 정치인은 "정치인부터 시작해 우리가 모두 비겁하고, 용인될 수 없는 이런 인종범죄를 막기 위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해 살비니를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난 2개월 간 난민과 이민자를 노린 12건의 총격과 2건의 살인, 33건의 신체적 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등 인종범죄가 크게 늘자, 살비니 장관이 증오와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밖에 동맹 소속의 로렌초 폰타나 장관이 인종주의적 폭력이나 증오 발언을 불법으로 규정한 1993년 제정된 소위 '만치노법'으로 불리는 반파시즘 법을 폐지하자고 제안한 것 역시 오성운동의 반감을 샀다.
디 마이오 부총리는 폰타나 장관의 제안 직후 "반파시즘 법 폐지는 연정 출범 전 약속한 과제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라며 즉각 추가 논의에 제동을 걸었다.
이처럼 오성운동과 동맹 사이의 파열음이 커지자, 연정이 곧 깨질 것으로 예측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동맹의 전통적인 파트너였지만, 자신을 적폐의 대명사로 몰아붙이는 오성운동의 거부로 이번 연정에 참여하지 못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겸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FI) 대표는 "둘 사이의 연합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최근 단언했다.
하지만, 이런 시각에 대해 나폴리 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마우로 칼리세 교수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오성운동 내부에 살비니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도 연정이 단시일 내 깨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양측 모두 상대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로 간의 간극이 선명히 노출되고 있는 것과 맞물려 향후 한정된 재원 아래 자신들의 핵심 공약을 먼저 실현하기 위한 오성운동과 동맹의 주도권 다툼도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고 일 메사제로 등 현지 언론은 전망했다.
가난한 남부에서 지지세가 높은 오성운동은 빈민과 실업자에게 월 780 유로(약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공약의 현실화를 밀어붙이고 있고, 동맹은 소득 수준에 따라 15% 또는 20%의 단일 세율을 채택해 세금을 대폭 감면해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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