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재난 르포] AI 휩쓴 겨울 견뎠더니 불지옥에 양계농장 초토화

입력 2018-08-08 15:05   수정 2018-08-08 15:08

[폭염재난 르포] AI 휩쓴 겨울 견뎠더니 불지옥에 양계농장 초토화
하루 최대 800마리 죽어 나간 나주 봉황면 농장 "매 순간 비상"
살충제 파동 넘고 AI 견뎠더니 한 달 전기료 1천만원…악재 '첩첩'


(나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하루하루 매 순간이 비상입니다."
전남 나주시 봉황면에서 38년째 산란계농장을 운영하는 김양길(65) 씨는 1994년보다 더한 올해 폭염에 애지중지 키우던 닭 6천여 마리를 잃었다.
기록적인 폭염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진 8일 정오께 축사 폐쇄회로(CC)TV와 공조시스템을 통합 관리하는 농장 상황실의 모니터 속 온도계 그래프가 35도를 넘어서자 빨간색 경광등이 켜지고 사이렌이 울렸다.
김씨가 말한 '비상상황'이 찾아왔다.
김씨는 축사 내부 온도 상승으로 사이렌이 울리면 물안개 분사 간격을 15분에서 7분으로 줄이고 현장에 나가 닭을 살펴본다.
스프링클러처럼 축사 천장을 따라 늘어선 분사구에서 물안개만 뿜어줘도 내부 온도는 2도 정도 내려간다.

다만, 닭이 온종일 물안개를 맞도록 둘 수 없어 분사 간격을 15분으로 정했다.
물러설 기미가 없는 폭염 기세에 닭들은 그 15분 사이를 버티지 못하고 픽픽 쓰러져 죽었다.
김씨가 나가 볼 때마다 닭 사체는 사육장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많을 때는 하루에 800마리가량 사체를 치웠다.
올여름 농장 사이렌은 수시로 울렸다.
닭들은 장마전선이 맥없이 물러난 지난달 초부터 맥을 잃기 시작했다.
땀샘이 없고 온몸에 깃털이 돋아난 닭은 구강 호흡과 배설로 몸 안에 쌓인 열기를 밖으로 내보낸다.

닭 20여만 마리가 빽빽하게 들어찬 사육장 내부 온도는 한낮이면 37도까지 치솟기 일쑤다.
닭도 더위를 먹으면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지고 식욕을 잃는다.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닭도 걱정인데 산란율 하락과 품질 저하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왔다.
올여름 김씨 농장에서 생산한 달걀은 여느 해보다 10%가량 양이 줄었다.
달걀 품질 등급도 올여름에는 평소보다 한 단계 내려갔다.
수익은 악화하는데 매달 1천만원씩 나오는 전기료까지 김씨를 옥죈다.
김씨 농장은 온도 관리를 위해 24시간 대형 환풍기를 가동한다.

축사 한쪽 벽면을 따라 설치한 환풍기가 멈춰 서면 사육장 내부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김씨 농장은 닭 생육과 날씨 상황을 고려해 매해 6∼9월을 여름철로 본다.
여름철 청구되는 전기료가 예년에는 한 달에 800만원 정도였으나 올여름에는 1천만원을 넘어섰다.
김씨는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 세에 지난 겨우내 농장 문을 닫아야 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큰 손실을 봤다.
가축재해보험에 들기는 했지만, 계절마다 잇따른 악재에 농장경영이 좀체 회복세로 돌아서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1994년 여름에는 겨울철 삼한사온 현상처럼 더위가 꺾였다가 되살아나는 변화라도 보였다"며 "올여름같이 비 한 방울 안 내리는 지독한 폭염은 처음"이라며 구슬땀을 훔쳤다.
그는 "AI에 폭염까지 찾아오니 하늘이 형벌을 내리는 것 같다"며 "이 긴 여름을 견디고 올겨울은 어떻게 버틸지 눈앞이 깜깜하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재난관리상황에 따르면 지난 6일까지 폭염으로 인한 가축 피해(폐사)는 모두 455만7천 마리로 집계됐다.
이 중 428만4천 마리가 더위에 약한 닭이다.
사상 유례없는 폭염에 양계농가가 또 한 번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h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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