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시장" 당선 후 집무실 옮겨, 입술 부르트고 링거주사 맞기도
1층 시장실 7년 권민호 전 거제시장 "고행의 길…지혜롭게 운영해야"
(양산=연합뉴스) 정학구 기자 = "민원인을 하루 평균 20팀에서 많으면 30팀을 만난 것 같다. 취임 한 달간 즐겁다는 마음으로 하니 괜찮다. 이러다 보면 직원들이 민원 덜 생기게 일을 잘 처리해주고, 그러면 시장실 방문객도 줄지 않겠나?"
김일권(66) 양산시장이 취임 직후 시청 3층에 있던 시장실을 1층 중앙현관 옆으로 옮겨 시장실을 노크하는 민원인 대부분을 직접 만나는 강행군을 하고 있다.
이전 당시 시장 집무실과 비서직 근무공간, 회의실 구획공사만 최소한의 경비로 시행했고, 면적도 기존 262㎡에서 150㎡로 줄었다. 9일로 이전한 지 한 달이 됐다.
민선 단체장이 취임 초 '시민 속으로 들어가겠다'며 시민 접촉을 늘리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이 경우도 비서실 직원이나 별도 민원 담당을 둬 한 번 거른 다음 만나곤 했지만 김 시장은 다르다.
그는 시장실을 찾는 민원인이 개인이든 단체든, 단순 민원이든 복합민원이든, 가리지 않고 직접 만난다.
비서실에서 대체로 30분 간격으로 한 팀씩 시장실로 들여보내는데 때에 따라 잠깐만에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아 하루에 20팀은 족히 만나고 많으면 30팀에 이른다.
김 시장은 이날 "한국 사람은 다혈질이지만 금방 식어버린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걸 가장 좋아한다. 규정 내놓고 안된다고만 하지 말고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고 보면 한국 사람들 되게 순하다"며 벌써 민원상담에 이골이 난 듯했다.
이날 오전 약간 취기가 있어 보이는 중년 남자 한 명이 시장실에 찾아와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주차단속을 완화해달라는 요구였다.
시장실 문턱이 거의 없어지다 보니 낮술을 먹고 오는 사람도 가끔 있고 단체로 들이닥치는 등 다양한 시민들이 시장실을 찾는다.
초인적 체력이 요구되는 데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너무 힘들어 며칠 만에 손을 들 법도 한데 김 시장은 짐짓 괜찮다며 태연한 모습이다.
"이런 분위기는 당분간일 듯하다. 전임 시장과 방향이 바뀌니 호기심도 있고…'민원실 간 김에 시장실 갔다가 진짜 시장 만나고 왔다'고 하니 주변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와 보는 경우도 있고…."
그는 "누군가 한 사람은 해봐야지, 표 받은 죄로 내가 한번 해보겠다"며 멈출 뜻이 전혀 없다는 태도다.
"화가 나서 온 사람은 커피를 뽑아 주며 분위기를 살핀다. 그러면 민원인들이 '시장이 커피도 직접 주나?' 그러면서 눈치 살피다 표정이 바뀐다. 그럼 대화가 부드러워진다"
민원인 응대법 비결을 설명하듯 이야기했지만 동석한 강호동 부시장과 김재근 공보관은 얼굴에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
김 공보관은 "정말 억울하고 청을 들어줘야 할 사람만 오는 게 아니고, 하다못해 주차단속 딱지 들고오는 사람도 있으니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다"라고 거들었다.
부임한 지 얼마되지 않은 강 부시장도 "시장님 결재가 너무 많더라. 줄여서 실국장한테 맡기고 큰 틀에서 시장님은 사람도 만나고 구상도 하시고 해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일과가 끝나면 너무 피로하지 않느냐고 재차 묻자 김 시장은 "(민원인들을) 안 만났을 때가 더 피로하다"며 웃어넘겼다.
그러면서 "젊었을 때 남의 집 점원도 해봤는데 장사 안되는 집 점원 그게 미치는 노릇"이라며 "장사 잘 되는 집은 신바람이 난다. (나는) 장사 안되는 집을 장사 잘되는 집으로 바꾸는 전문이다. 내가 즐거우려고, 일도 마찬가지다"라고 오히려 주변을 안심시키는 여유를 부렸다.
그렇지만 체력에도 한계는 있는 법, 한 달간 강행군을 하면서 김시장과 이득수(58) 비서실장 모두 입술이 부르텄다.
김 시장은 비서실 직원들의 권유로 최근 링거주사를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취임 직후 행정능력이나 감각이 뛰어난 5급 10년 차 고참을 비서실장에 앉히고 토목직 가운데 하승종(50·6급 12년 차) 계장을 비서실에 충원했다. 야당 시의원들 반대도 있었지만, 행정과 기술직렬 대표급을 측근 참모로 보강한 것이다.
시장실 팻말 옆엔 아예 '민원상담실'이란 팻말을 하나 더 붙였다.
1층 열린 시장실 설치 '원조'는 사실 권민호 전 거제시장이다. 그는 초선 1년이 돼 갈 무렵 1층으로 집무실을 옮겨 재선 임기까지 7년가량을 보냈다. 그는 김 시장에게 '지혜로운 운영'을 주문했다.
그는 "저 역시 1층으로 옮긴 뒤 초반에는 민원인들을 거의 직접 만났지만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조직개편을 통해 고충처리담당관실을 만들어 대부분 거르도록 했다"며 "시민들로선 좋겠지만, 고행의 길이다. (시장실 운영을) 지혜롭게 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권 전 시장은 "직원들 선에서 안되면 저한테 넘겼지만 대부분 안되는 것을 갖고 여러 부서 돌다가 시장 만나보자고 하는 경우였다"며 "시장은 출장도 가고 투자유치 등 큰일을 치고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인 김 시장은 3선을 노리던 한국당 나동연 후보를 세 번째 대결 끝에 꺾고 당선된 바 있다.
선거기간 '시민이 시장인 시정'을 약속한 그는 취임식 대신 치른 선서식에서 '나쁜 병사는 없다, 나쁜 리더만 있을 뿐이다'라는 나폴레옹의 말을 인용, 늘 공부하고 솔선수범하는 믿음직한 리더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b940512@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