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상관 지시 따랐을 뿐"…검찰 "지시 여부 밝히려고 영장 청구"
'참고인' 외교부는 영장 발부, '피의자' 행정처는 잇따라 기각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강제징용·위안부 소송 재판거래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검찰이 법원행정처 전·현직 심의관과 대법원 재판연구관, 대법관 등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이 무더기로 기각됐다.
검찰은 법원이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면서 전·현직 법관들에게만 다른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참고인에 불과한 외교부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될 만큼 재판거래 혐의가 소명된 상황에서, 동일한 범죄 혐의의 직접 당사자인 판사들 영장을 기각하는 처사는 논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10일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10여 건을 이날 모두 기각됐다.
법원은 이달 초에도 강제징용·위안부 소송 재판거래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검찰이 청구한 법원행정처 국제심의관실과 두 소송 관련 문건 작성에 관여한 전·현직 판사들 압수수색 영장을 전부 기각하고 외교부만 압수수색을 허용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봉수 부장검사)는 지난 2일 외교부 압수수색에서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이 강제징용 소송과 법관 해외파견을 논의하기 위해 외교부 관계자들과 접촉한 정황을 확보했다.
검찰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청와대를 방문할 때마다 해당 심의관들이 관련 보고서를 작성한 단서도 잡고 이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전부 기각됐다.
박 부장판사는 전·현직 심의관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데 대해 "상관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따른 것일 뿐"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법원은 2013년 9월 징용소송과 관련해 외교부에 "절차적 만족감을 주자"는 내용이 담긴 의혹 문건을 작성한 박모 전 법원행정처 심의관의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도 허용하지 않았다.
박 부장판사는 강제징용 소송을 담당한 당시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의 경우 "사건을 검토한 것일 뿐"이라는 이유로, 전·현직 주심 대법관의 자료에 대해서는 "재판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할 수 있다"며 각각 영장을 내주지 않았다.
박 부장판사는 징용소송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해 법원행정처가 보관 중인 자료의 경우 "이미 충분히 제출됐고, 제출되지 않은 자료에 대해서는 법원행정처가 임의제출 요구를 거부하였다는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재판 또는 사법행정과 관련해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취지의 일부 법관들 진술을 확보하고 법원행정처 인사자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역시 기각됐다.
박 부장판사는 "대상 법관이 직접 본인이 통상적인 인사 패턴에 어긋나는 불이익을 받았다고 진술하는 정도의 소명이 필요하다"며 "이미 본인이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고 진술한 법관들에 대해 확인해볼 필요는 있지만, 법원행정처에 요구하면 해당 법관들 동의를 얻어 관련 자료를 제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법원행정처로부터 PC 하드디스크 속 문서파일을 일일이 확인하는 방식으로 일부 문건들을 넘겨받고 있으나 기획조정실 등 일부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문건을 제외한 인사자료 등은 제출받지 못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심의관들이 임 전 차장의 지시만을 따랐는지는 아직 조사하지도 않았다. 지시 여부를 밝히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한 것"이라며 "상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고 하더라도 지시를 따른 행위자의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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