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엄마를 좋아한다?'…생물학적 근거 없다

입력 2018-08-13 10:44  

'아기는 엄마를 좋아한다?'…생물학적 근거 없다
3살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3세 신화' 20년전 명확히 부정된 속설
"엄마에게 매달리는 건 육아의 '결과'", "아빠 껌"도 많다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0~3세 아기에게 아빠와 엄마 중 누가 좋은지 물어보면 당연히 엄마가 좋다고 한다."
지난 5월 말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일본 집권 자민당 간사장 대행이 "말로는 남녀 공동 참여사회라거나 '남자도 육아'를 해야 한다고 근사하게 말해도 이는 정작 아이에게는 폐가 되는 이야기"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면서 한 발언이다. 그는 "양육이라는 힘든 일을 하는 엄마들을 좀 더 아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논지의 연설에서 이 발언을 했지만 인터넷에선 남녀의 역할을 분리하는 발언이 아니냐는 의견이 다수 제기됐다. 이 발언이 물의를 빚은 데서 보듯 아기는 주로 엄마가 돌보는게 일반적이다.


초등학교 4학년과 1학년 딸을 두고 있는 도쿄도(東京都) 가쓰시카(葛飾?)에 사는 쓰보이(坪井. 45)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기우다 간사장 대행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아이가 태어난 직후부터 수유를 빼고는 '엄마가 아니면 안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파견사원으로 일하던 그는 심야 시간외 근무가 많아지고 휴일출근이 증가하자 "가족과 더 어울리고 싶다"고 생각해 큰 딸이 2살 되던 해에 퇴직했다. 집에서 개인사업을 시작했고 아내가 복직한 후로는 보육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일과 식사 준비 등을 도맡았다. 딸들은 지금 '아빠 껌'이다.
아이들은 일이 있으면 으레 아빠부터 찾지만 보육원에서는 '엄마가 양육하고 있다'는 걸 전제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아빠의 존재가 희미한 가정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어렸을 때부터 육아를 하지 않으면 갈수록 아이들과 관계를 맺기가 어려워진다. 가사나 양육을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성별 차이 보다는 개인차가 크다." 쓰보이씨는 "당연히 엄마가 해야 한다"는 가치관에 치여 사는 사람도 있다"면서 "그런 현실을 바꾸는게 정치가가 해야할 일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과학적으로는 어떨까. 부모와 자식관계를 연구하는 엔도 도시히코(遠藤利彦) 도쿄(東京)대학 교수(발달심리학)는 13일 아사히(朝日)신문에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받아 들여주는 양육자의 존재는 어린이의 심신발달에 중요하지만 엄마가 아니면 안된다는 법은 없다. 아빠나 혈연관계가 없는 보육자라도 좋다. 어린이는 의외로 늠름해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자란다"고 말했다. "생물학적으로 아기는 자립할 때까지의 기간이 길어 엄마 혼자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무겁기 때문에 가족이나 혈연 이외의 사람도 서로 돕는 '집단공동형' 육아가 기본"이라고 한다. "엄마만 육아를 담당하는게 오히려 예외적"이라는 것이다.
3살까지는 엄마가 육아에 전념해야 한다는 이른바 '3살 신화'는 이미 20년전 후생백서에서 명백히 부정됐다. 당시 백서는 3살신화에 대해 "역사적으로 보아 보편적인 것이 아니며 대부분의 육아는 아빠(남성)도 수행 가능하기 때문에 합리적 근거를 인정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엔도 교수는 그런데도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도 "엄마가 육아에 전념하는게 좋다"는 사고방식이 뿌리 깊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게 유일한 이상형이라고 단정해 버린다는 것이다. 엔도 교수는 "롤 모델이 증가하면 그런 사고방식도 바뀔 것"으로 기대했다.
도쿄대학과 교육,육아,생활,어학,글로벌 인재교육 업체 베넷세가 0~1세 아이를 둔 3천가구를 대상으로 작년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평일 육아시간은 엄마의 70% 이상이 10시간 이상인데 비해 아빠는 2시간 미만이 70%이고 40%는 1시간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조사에서도 외국에 비해 일본의 경우 엄마의 부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양육세대의 생활을 조사하고 있는 후지타 유이코(藤田結子) 메이지(明治)대학 교수는 "일본은 회사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 평가받고 남성의 육아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사도 많다"고 지적했다. 여성들도 "남편이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기대하는게 무리"라거나 "열심히 일해봤자 경력이나 수입증가로 연결되지 않는다"며 포기하고 가사와 육아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후지타 교수는 "아이들이 엄마에게 매달리는 건 육아를 담당해온 '결과'일지 모른다"면서 "정치가들이 '원인'에도 눈을 돌렸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lhy501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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