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미국이 100여 년 전 필리핀에서 자행한 '인종청소'를 상징하는 종(鐘)을 반환키로 했다고 AFP통신이 13일 보도했다.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관의 몰리 코스시나 대변인은 "발랑기가의 종을 필리핀에 되돌려주기로 했다. 국방부 장관은 이런 결정을 의회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코스시나 대변인은 이어 "구체적으로 언제 종이 반환될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이 종들이 가톨릭 교회로 반환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반환할 종은 필리핀 사마르 섬 남부 발랑기가의 성당 종탑에 있던 것으로, 1899∼1902년 미국-필리핀 전쟁 중 미군이 가져갔다.
애초 이 종들은 미사의 시작을 알리는 등의 목적이었지만, 1901년 9월 원주민 에밀리오 아키날도 사령관이 이끄는 반군이 현지에 주둔하던 미군 9연대 예하 부대를 공격하는 신호로 사용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필리핀 반군 300여 명은 여성으로 변장해 무기가 들어 있던 목관을 교회로 가져갔으며, 이튿 날 아침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미군을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미군 59명이 숨지고 23명이 부상했는데, 이는 미국-필리핀 전쟁 기간에 최악의 미군 패전으로 기록됐다.
미군 9연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원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한 뒤 시체를 불태웠고 마을에도 불을 질렀다. 이를 계기로 필리핀 곳곳에서 미군에 의한 대규모 '인종청소'가 전개됐다.
미군은 이런 사실을 숨겼고, 반군을 제압한 뒤 발랑기가를 떠날 때 원주민들로부터 종을 선물 받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영국인 작가 봅 쿠티는 발랑기가에서 벌어진 대학살극의 진상과 문제의 종을 미국이 소유하게 된 과정을 조사했으며, 미군이 종을 선물 받은 것이 아니라 전리품으로 빼앗은 것으로 묘사했다.
미군은 3개의 종 가운데 2개를 와이오밍 주(州)에 있는 전몰군인 기념비에 설치했고, 나머지 한 개는 한국 주둔 부대에 보관했다.
필리핀 정부는 그동안 지속해서 미국에 종 반환을 요구해왔다.
미국에 등을 돌리며 친 중국 성향을 보여온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역시 이 문제를 제기해왔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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