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이중업 옥중서신 최초 발견

입력 2018-08-13 17:1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이중업 옥중서신 최초 발견
한국국학진흥원 "출옥 앞두고 아들에게 보내"



(안동=연합뉴스) 김효중 기자 =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인 기암(起巖) 이중업(李中業·1863∼1921) 선생의 옥중서신이 처음으로 나왔다.
13일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정부가 1990년 이중업에게 애족장을 내렸으나 지금까지 수형 기록을 찾지 못해 옥중생활 면모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진성이씨 향산고택이 2002년과 2005년에 기탁한 4천660점 자료 가운데 2천300여점의 간찰(簡札·간지에 쓴 편지)류에서 최근 발견했다.
가로 18cm, 세로 22cm 한지에 초서로 쓴 것이다.
편지에는 일제강점기 형무소에서 외부로 전송하는 편지를 사전 검열한 표식인 '검(檢)'자 붉은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1920년 음력 9월 5일 출옥을 앞두고 8월 11일 보냈다고 한다.
발신이 아버지라고 되어있어 수신은 당연히 아들이다. 이중업 아들은 동흠(棟欽)과 종흠(棕欽) 형제이나 종흠이 양자로 갔기 때문에 수신인은 동흠으로 추정한다.
내용을 보면 옥중에서 악성 종기에 시달리고 학질까지 겹쳐 죽을 고생을 하는 사정을 전하며 9월 5일 출옥한 뒤 일정을 이야기한다.
또 옥중에 사식을 넣어준 하영숙이란 인물에게 고마움을 전하도록 하고, 주변 친척은 방문하되 외부인은 일체 만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중업은 1910년 일본이 강제병합을 단행한 뒤 9월 17일(음력 8월 14일) 단식에 들어가 24일 만인 10월 10일 순국한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의 아들이다.
퇴계 이황의 12대손인 이중업은 서산 김흥락(金興洛) 제자가 되어 퇴계 학맥을 계승했다.
아버지가 을미의병을 일으키자 당교격문(唐橋檄文)을 지어 안동, 예안, 상주, 봉화 등 장터에 내다 붙이고 경북 북부 독립운동 저변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김대락(金大洛) 여동생인 김락(金洛)과 결혼했다. 김락은 예안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일경에게 붙잡혀 갖은 고문을 견디다가 두 눈을 실명했다.
이중업은 곽종석 등과 파리 장서를 작성해 서명 운동을 일으켰고 중국 쑨원(孫文)과 우패이푸(吳佩孚)에게 독립청원서를 직접 전달하려고 시도했다.
당시 국내외 정세를 정확히 탐문하고 전국을 돌며 유림의 애국 충정심을 고취했다. 또 애국지사를 비밀리에 방문해 광복운동을 의논했다고 한다.
kimh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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