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서 부녀상봉 앞둔 황우석씨…"참 소설같은 얘기죠"
(서울=연합뉴스) 공동취재단 정빛나 기자 = "3개월만 피난하고 고향에 들어가자는 생각으로 나왔거든. 그런데 그게 68년이 됐어요. 세 살짜리가, 71세에요. 부녀상봉이라는 게 참…. 소설 같은 얘기예요."
15일 제21차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측 방문단 중 한 명인 황우석(89·서울)씨는 다가오는 딸 영숙(71)씨와의 재회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듯 이렇게 말했다.
38선 이남 미수복지 황해도 연백군 출신인 황씨는 1951년 1·4 후퇴 때 인민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홀로 배를 타고 피난길에 올랐다.
3개월만 몸을 피할 생각이었지만, 그 길로 부모님과 세 여동생은 물론 처자식과도 생이별했다.
당시 딸은 겨우 세살배기. 워낙 어릴 때라 딸의 생김새는 기억 속에서조차 흐릿해진 지 오래다.
"아휴, (기억) 안 나죠. 세 살 적이라…. 이름 보고 찾아야죠. 이번에 가서. 강산이 7번 변했는데."
황씨는 가족들과 헤어진 뒤 강화도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생계를 유지하다 군에 입대해 5년 가까이 복무했다.
북녘에 두고 온 가족을 찾기 위해 이산가족 찾기 신청을 한 지는 어언 30년을 훌쩍 넘었다.
대한적십자사에 제출한 생사확인 의뢰서에는 '뭉술이', '리뿐이', '오목이' 등 어렸을 적 세 여동생의 애칭도 함께 기재했다. 이렇게 하면 찾기가 더 수월할까 싶어서였다.
황씨는 오랜 기다림 끝에 이번 상봉 대상자로 최종 선정되면서 꿈에 그리던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게 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부모님과 세 여동생 모두 사망했다는 통보였다. 아내도 1979년 51세로 비교적 일찍 세상을 뜬 것이 확인됐다.
북녘에 남은 황씨의 혈육이라곤 딸이 유일하다. 북측 가족인 황영숙씨는 이번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장에 30대인 자신의 딸과 함께 나오겠다고 알려왔다. 황씨로선 생전 처음 외손녀도 만나 새로운 가족을 생기게 됐다.
그는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듯 "오래 산 보람이 있다"면서도 "여동생들이 다 사망을 했다. 내 혈육이라곤 걔 하나 살아서"라고 안타까운 심정도 보였다.
이어 딸에겐 미안한 마음이 크다며 "가까운 친척도 없고 내 누이동생 셋은 시집을 여기저기로 갔을 것 아니냐. 그러니까 얘가 고생도 많이 했을 거고 어려움도 많이 겪었을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딸과의 만남.
제일 먼저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지금까지 살아줘서, 살아서 만나게 돼서 감사하다고 얘기를 해야겠다"며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래도 이렇게 지금까지 살아줘서 진짜 고맙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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