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여비서에게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여론이 분분하다. 서울서부지법은 14일 자신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33) 씨를 상대로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추행 1회, 강제 추행 5회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 4월 불구속 기소된 안 전 지사의 혐의 전부에 대해 무죄 판결했다. 두 사람 사이에 업무상 위력 관계가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제반 경위와 정황을 고려할 때 김 씨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당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판결 요지다.
지난 3월 한 방송에 출연해 현직 도지사이자 유력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던 거물 정치인에게 여러 차례 성폭력을 당했다고 한 김 씨의 폭로는 충격적이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 사건은 그러나 5개월여 만에 1심 무죄 판결이 나면서 피해자는 물론 그를 지지하던 여성단체들도 큰 실망과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김 씨는 "부당한 결과"라며 "안희정의 범죄 행위가 정당하게 심판받도록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여성단체들은 "검찰이 즉각 항소해야 한다. 우리의 대응은 항소심, 대법원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온라인에서도 판결을 비판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반면 안 전 지사의 지지자들은 "완벽한 무죄다. 무고죄다"며 판결을 환영했다. 안 전 지사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던 검찰은 엇갈린 여론과 사안의 중대성으로 볼 때 항소가 불가피해 보인다. 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상급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그렇다고 1심 재판부가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형사재판은 죄형법정주의와 객관적 증거, 엄격한 법 해석을 기초로 하는 만큼 이에 어긋날 경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 재판부가 "사회에서 사용되는 성폭력 행위의 의미와 형사법에 규정된 성폭력 범죄의 의미가 일치하지 않는다"며 두 가지를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고 판시한 것도 그 때문이다. 법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결국 입법부 등 당국이 성폭력 처벌 관련 법 규정을 좀 더 세밀하게 정비하는 작업이 시급해 보인다.
이번 판결은 올해 1월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를 시작으로 촉발돼 사회 전반으로 확산한 '미투'(Me Too) 운동에 대한 첫 사법적 판단이다. 이번 일이 자칫 미투 운동을 위축시키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또 몰카 등 사이버 성범죄의 수사와 재판에서 여성이 부당하게 차별받고 있다는 여성계의 불만도 증폭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번 판결과 무관하게 성범죄에 대해서는 남녀 구분 없이 엄중히 수사하고 처벌한다는 방침을 유지해야 한다.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안 전 지사는 불륜이라는 비윤리적 행위까지 용서받은 게 아닌 만큼 반성하고 자숙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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