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아빠의 장례식날. 엄마도 없이 혼자 남은 중학생 딸 앞에 낯선 사람이 삼촌이라며 나타난다.
장례식이 끝났는데도 삼촌은 돌아가지 않고 집까지 따라 들어와 눌러앉을 기세다. 그러면서 슬슬 아버지의 보험금 이야기를 꺼낸다.
눈치 빠른 중학생 조카는 삼촌의 꿍꿍이를 짐작하고 잔뜩 경계심을 품고 삼촌을 대한다.
23일 개봉하는 김인선 감독의 신작 '어른도감'은 너무 일찍 철이 든 조카와 철이 덜 든 삼촌이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삼촌 '재민'(엄태구 분)은 어린 조카 '경언'(이재인 분)을 만만히 보고 접근한다. 목표는 경언 아빠의 사망보험금 8천만원이다.
그러나 요즘 중학생이면 어지간한 것은 다 안다. 경언은 재민이 잠든 사이 재민의 신분증과 휴대전화를 샅샅이 뒤진다. 한참 전 집을 나갔다 돌아온 삼촌은 돈 많은 여성을 등쳐먹고 사는 제비였던 것.
재민은 법정후견인의 지위를 이용해 경언에게 돌아갈 사망보험금을 빼돌려 잠적하지만, 경언은 기어코 재민을 찾아내 급소를 걷어차 버린다.
하지만 재민은 이미 자신의 빚을 갚는 데 경언의 보험금을 써버린 상황. 재민은 다음 타깃인 약사 점희를 공략하기 위해 경언에게 동업을 제안하고, 경언은 어쩔 수 없이 부녀 사이를 가장한 사기극에 동참하게 된다.
'어른 같은 아이'와 '아이 같은 어른'이라는 정반대 캐릭터지만 두 사람에게는 외로움과 혈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천애 고아가 될 뻔한 경언은 겉으로 보기엔 강한 아이지만 세상에 홀로 남겨진 외로움에 남몰래 울음을 터뜨린다. 꿈을 좇아 집을 나간 재민은 차가운 세상에서 꺾이고 상처 입고 실패만 거듭했다.
두 사람 모두 태연한 척, 강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외로움에 사무친 처지다.
그런 두 사람을 필연적으로 이어주는 것은 혈연이다. '피는 물보다 강하다'는 말처럼 두 사람은 혈연 때문에 혹은 혈연 덕분에 서로를 못 본 척하지 못하고 차츰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의지하는 사이로 발전해나간다.
김인선 감독은 "어른 같은 아이, 아이 같은 어른이 만나서 벌어지는 일을 통해 '그렇다면 나는 어떤 어른이 돼야 할까,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밀정', '택시운전사' 등에서 중저음 목소리와 카리스마 있는 표정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긴 엄태구는 이번 작에서는 철없고 능글맞은 재민 역을 능숙하게 소화해냈다.
엄태구는 "대본을 보고 재민 역을 너무 하고 싶었다"며 "저에게 재민 캐릭터는 일종의 도전과 같은 것이었고, 지금까지 제가 출연했던 어떤 역보다도 대사가 많아 대사를 외우는 데 힘이 들었다"고 말했다.
엄태구와 합을 맞춘 이재인 역시 아빠를 여의고 슬픔에 빠진 모습부터 재민의 급소를 걷어차는 당찬 모습까지 소화해내며 성인 연기자 못지않은 연기력을 입증했다.
지난 5월 폐막한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전회차 매진 기록을 세우며 넷팩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관객의 입소문을 바탕으로 정식 개봉에 성공했다.
김 감독은 "영화를 개봉할 수 있게 돼 너무 기쁘고 설렌다"며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유쾌한 기분, 밝은 기운을 가득 담아 나가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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