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처 기조실 심의관들 PC서 사찰의혹 문건 일시에 대거 사라져
"'판사 뒷조사' 문제되자 행정처 심의관들에 파일삭제 지시"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재판거래·법관사찰 의혹으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이 비슷한 시기에 의혹 문건들을 대거 삭제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검찰은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지시로 문제가 될 만한 문서들을 삭제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사건 관련자로부터 확보하고 법원행정처 차원의 조직적 은폐 시도가 있었는지 수사할 방침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봉수 부장검사)는 최근 법원행정처 PC 하드디스크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양승태 사법부 시절 기획조정실에 근무한 심의관들 대부분의 PC에서 법관사찰 의혹 문건들이 삭제된 흔적을 발견했다.
기획조정1·2심의관으로 근무한 김모(42) 부장판사가 지난해 2월20일 당일 2만4천500개 파일을 삭제한 사실은 법원 자체조사에서 드러난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은 임모(40) 부장판사 등 당시 기획조정실에 함께 근무한 심의관들 PC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문건들이 대거 사라진 정황을 추가로 확인했다. 삭제된 문건은 대부분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에 비판적이었던 국제인권법연구회,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에 대한 법원행정처 차원의 대응방안을 담은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최근 전직 심의관들을 차례로 불러 조사하는 과정에서 문서 삭제 경위를 추궁한 끝에 "이규진 전 상임위원의 지시가 있었다"는 복수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판사 역시 같은 취지로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인사이동 당일 새벽에 인수인계할 파일을 추려낸 후 남은 대량의 파일을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는 법원 자체조사 보고서와 어긋나는 진술이다.
문건들이 삭제된 시기는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일부 법관에 인사불이익을 줬다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해 2월을 전후한 때다. 당시 법원행정처 기조실 심의관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던 이모 판사가 이 전 상임위원으로부터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 부당성을 지적하며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사법부 내에서 사찰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검찰은 판사 뒷조사가 외부로 노출되는 상황을 우려한 이 전 상임위원이 당시 기조실 심의관들에게 문건 삭제를 지시했다고 보고 있다. 법원행정처 소속도 아닌 이 전 상임위원이 행정처 심의관들에게 내린 지시가 월권에 해당할 뿐 아니라 공용서류손상 등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조직적 은폐에 가담한 전·현직 법관들을 가려낼 방침이다.
검찰은 인사모 등 일선 법관들에 대한 대응을 지시한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 '윗선'이 문건 삭제 등 은폐 시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박 전 처장은 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이 전 상임위원에게 2015년 7월 "인사모를 잘 챙겨보라"고 지시한 사실이 법원 자체조사에서 드러난 바 있다. 이후 이 전 상임위원과 기획조정심의관으로 일하던 박모(41) 창원지법 부장판사 등이 수시로 법관모임의 동향을 파악해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 등에게 보고했다.
검찰은 이날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한 박 부장판사를 상대로도 법원행정처의 조직적 은폐 시도가 있었는지 캐묻고 있다. 박 부장판사는 2015년 2월부터 2년간 기획조정실에 근무하면서 '인사모의 자연소멸 로드맵'을 구상하는 등 법관모임에 대한 법원행정처 차원의 대응방안 수립을 주도한 인물이다.
검찰은 이 전 상임위원을 조만간 피의자로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그는 인사모 대응은 물론 옛 통합진보당 지방의원의 행정소송에 개입하는 등 여러 의혹에 깊숙이 연루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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