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회의 인준 유력, 차기 대권 향한 쟁투 치열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대한불교조계종이 총무원장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16일 열린 중앙종회 임시회에서 총무원장 불신임안이 가결됨으로써 즉각 퇴진을 거부했던 설정 스님은 해임 위기에 몰렸다.
총무원장 퇴진을 둘러싸고 혼란을 거듭해온 조계종의 내홍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 원로회의 인준하면 총무원장 해임
조계종 최초 총무원장 불신임안 가결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설정 스님은 원로회의에서 불신임안을 인준하면 자리를 잃게 된다.
원로회의는 오는 22일 열릴 예정이지만, 사태의 긴급성을 고려해 일정이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로회의에서는 재적 원로의원 23명 중 과반인 12명 이상 찬성하면 불신임안이 의결된다.
현재 조계종 상황을 고려하면 원로회의에서 중앙종회에서 통과된 총무원장 불신임 결의안을 인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원행 스님과 법타 스님 등 원로의원 10명은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고 총무원장, 교육원장, 포교원장 등 종단 집행부의 즉각 사퇴를 요구한 바 있다.
당시 성명에 참여하지 않은 원로의원 2명만 더 동의하면 수치상으로는 불신임안이 인준되는 셈이다.
이날 중앙종회 투표도 애초 불신임안 통과가 불투명했지만, 예상보다 많은 찬성표가 나왔다는 평가다. 찬성 56표로 가결에 필요한 50표를 훌쩍 넘겼다.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불신임안을 제출한 중앙종회 최대 계파 불교광장 소속 의원 외에 야권인 법륜승가회나 비구니 스님 쪽에서도 찬성표가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중앙종회 수석부의장 초격 스님은 이날 투표 결과에 대해 "종단을 걱정하는 종회의원 스님들이 현명한 판단을 한 것 같다"며 "불신임안이 종회에서 통과됐고 종정 교시도 있었기 때문에 원로회의 인준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은처자 의혹'에 조기퇴진 운명
설정 스님은 지난해 11월 1일 임기 4년의 제35대 총무원장으로 취임했다.
선거 과정에서 서울대 학력위조 의혹, 거액의 부동산 보유 의혹, 숨겨둔 자녀가 있다는 의혹 등을 받았지만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지지를 받으며 당선됐다.
선거 당시 설정 스님은 학력위조 의혹에 대해서는 사과했으나, 은처자 의혹에 대해서는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깔끔하게 소명하겠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MBC 'PD수첩'이 지난 5월 1일 방송에서 설정 스님 관련 의혹을 다루면서 논란은 더욱 확대됐다.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 등 불교시민단체가 설정 스님 퇴진을 요구했고, 설조 스님이 40일 넘게 단식을 하면서 압박했다.
결국 설정 스님은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을 열어 "종도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조속히 진퇴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종단 내부에서도 설정 스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설정 스님은 지난 1일 교구본사주지협의회에 오는 16일 중앙종회 임시회 이전에 퇴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로써 16일 이전 퇴진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으나 설정 스님은 지난 13일 돌연 입장을 번복했다.
그는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즉각적인 퇴진 결정을 유보하고 올 연말에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설정 스님은 퇴진 유보 이유로 개혁을 언급하면서 혁신위원회를 새로 구성해 직선제 등을 포함한 선거제도 개혁 등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마음을 비웠다"던 설정 스님의 입장 변화는 자승 전 총무원장 측이 사퇴를 요구한 데 따른 대응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설정 스님은 이날 임시회에서도 "종헌종법에 근거한다면 불신임안을 다룰 근거가 전혀 없다"고 맞섰지만, 불신임안 통과를 막지 못했다.
설정 스님은 이날 임시회에 앞서 총무원장 궐위 시 권한대행 자리를 맡는 총무부장에 진우 스님을 임명했다.
진우 스님은 설정 총무원장 체제에서 사서실장, 호법부장을 지냈으며 지난 9일 기획실장에 임명된 지 일주일 만에 자리를 또 옮기게 됐다.
◇ 혼돈의 조계종…종단 화합·안정까지 먼 길
원로회의에서 총무원장 불신임안을 인준하면 조계종은 총무원장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되며, 60일 이내에 총무원장 선거를 치러야 한다.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진 조계종이 안정적으로 차기 집행부를 선출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설정 총무원장이 해임되면 차기 권력을 잡기 위한 세력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현 기득권 세력과 개혁파의 충돌도 예상된다.
전국선원수좌회와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 등은 오는 23일 전국승려대회를 열 계획이다.
이를 지지하는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 불교개혁행동 등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중앙종회 해산 등을 요구하고 있다.
불교개혁행동은 이날 임시회 결과와 관련해 "설정 총무원장 불신임을 환영한다"면서도 "원로의원 스님들께 비상사태의 선언과 병폐집단 중앙종회의 해산을 요청드린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불교개혁행동은 원로회의 전까지 버스 4대를 동원해 원로의원들을 찾아가는 '희망 대장정'에 나설 예정이다.
교구본사주지협의회와 중앙종회 등 현재 조계종 주요 구성원들은 승려대회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중앙종회는 이날 채택한 결의문에서 "승려대회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종도로서의 도리와 종헌질서는 아랑곳하지 않는 파렴치와 후안무치로 무장한 투사놀음의 가면일 뿐"이라며 승려대회에 반대하며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doubl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