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욱인 교수, 신간 '번안 사회'서 분석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조미료의 감칠맛에 친숙한 대중의 입맛이 일제강점기부터 확립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백욱인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의 저서 '번안 사회- 제국과 식민지의 번안이 만든 근대의 제도, 일상, 문화'(출판사 휴머니스트) 내용이다.
백 교수는 이 책에서 언어, 학문, 의식주 문화, 대중문화 등에 남아있는 일본 식민지 시대의 잔재를 꼼꼼히 분석했다. 우리가 일본 식민 지배를 겪으며 서양을 직접 대면하는 대신 일본식으로 '번안'된 것으로 받아들였으며, 해방 이후에도 식민 잔재를 청산하기는커녕 미국의 영향 아래 답습했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받아들여 아직도 영향을 미치는 번안물 중 식문화로는 경양식, 밀가루, 조미료, 식품업 등이 꼽힌다. 특히 일본 조미료 회사 '아지노모토'에서 만든 조미료 아지노모토는 "일본 근대 식품 산업의 발명품이 식민지에 이식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아지노모토는 전통의 맛을 대체하거나 그 속으로 파고들거나 그것과 결합해서 근대의 맛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지노모토사는 1929년 2월 조선에 주재원을 파견하고 1931년 8월에는 사무소를 설치해 현지화와 이식 작업을 펼쳤다. 일간지에 계속 광고를 내 경제성과 근대성을 내세우며 모든 한식 요리와 김장 김치, 간장·고추장에까지 이 조미료를 넣으라고 권했다.
일제가 물러난 뒤에도 한동안 아지노모토가 밀수됐고, 해방 이후 산업화 근대기에는 국내 업체들이 이를 재이식해 '미원'과 '미풍' 등 인공 조미료를 만들기 시작한다.
전투식량이지만 과자로도 흔히 즐겨 먹는 건빵 역시 일제강점기 번안물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건빵은 서양 비스킷의 일본식 번안물로, 일본군은 포르투갈에서 16세기에 전한 설탕 과자를 변형해 별 과자를 만들고 이를 군용 비상식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식민지 때 만주군 '간도특설대'에 근무하다가 한국전쟁 시기에는 한국군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백선엽은 전쟁 중 동립산업 함창희 사장을 만난다. 이후 미군이 들여오는 밀가루로 대구에서 건빵을 만들던 동립산업은 1950년대에 정부 보유비 특혜를 받아 설비를 확장하고 군에 공급하는 건빵을 대량생산하는 시스템을 갖춘다. 백선엽은 아마 식민지 시대에 먹던 일본의 전투식량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의 지시대로 건빵과 별사탕이 대량생산되기 시작했고, 전투식량으로 자리 잡았다." (165쪽)
저자는 이렇게 일본식 번안물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우리는 아직도 불치의 '식민지병'을 앓고 있다. 여전히 제국주의 지배가 낸 상흔이 남아있다. 중앙청을 폭파하고 독립기념관을 짓는다고 식민지의 흔적과 상처가 사라지지 않는다. 식민지 시대를 몸으로 살지 않았지만 그 유제와 상처를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밖에 없었던 세대가 식민지 상흔의 출처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식민지 흔적을 확인해 그것에 이름을 지어주고 정체를 분명히 만드는 작업을 통해서만 식민지 상흔을 지울 수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의도적으로 식민지의 흔적에 집착한 것은 그 때문이다." ('프롤로그' 중)
364쪽. 1만9천원.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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