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올케·형수상봉…고령화로 '한 다리 건너 상봉' 늘어
(서울=연합뉴스) 공동취재단 김효정 기자 = 경기도에 사는 정학순(81)씨는 6·25 전쟁 당시 헤어져 다시 보지 못한 16살 오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지런하고 웃음이 많았던 오빠는 어느 날 마을 청년들 소집에 따라나서 강원도 철원 인근 북쪽 산골 마을의 집을 나선 뒤 연락이 끊겼다. 이후 정씨 가족이 피난길에 오르면서 연락할 길은 아예 사라졌다.
오빠는 세상을 떠났지만, 정씨는 20일부터 2박 3일간 금강산에서 열리는 1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북한에 사는 오빠의 아내(74)와 아들(45)을 만나게 됐다.
정씨는 "전쟁 후 가족들을 찾아 혼자 빈집으로 돌아갔을 오빠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며 잠시 울먹인 뒤 "어린 나이의 오빠가 가족도 없이 외롭게 북에서 어떻게 살아왔을지가 가장 궁금하다"고 전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서는 꿈에 그리던 옛 가족이 이미 세상을 등진 탓에 그 배우자와 자녀 등 이들이 '새롭게 꾸린 가족'을 대신 만나는 이들도 많다.
비록 얼굴은 처음 보는 사이지만 옛 가족의 생전 자취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이번 상봉은 큰 의미가 있다.
대구의 박홍서(88)씨는 황해도 평산군에 살던 가족들이 1946년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원산에서 병원을 운영 중이던 큰형 가족과 영영 헤어졌다.
당시 태어났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던 큰형의 아들을 박씨를 이번 상봉에서 만나게 됐다. 남자 조카는 어느덧 72세가량의 노인이 됐고, 68∼69세가량의 여자 조카도 있다는 사실도 생사확인 회보를 통해 알게 됐다.
박씨는 조카들 얼굴을 생전 처음 보는데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고향을 기억하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함경북도가 고향인 이춘애(91)씨는 전쟁 때 시댁을 따라 피난하면서 친정어머니, 남동생과 이산가족이 됐다. 북녘의 남동생 창호씨는 지난해 9월 86세로 사망했고 이번 상봉에서는 조카딸과 조카며느리를 만난다.
남동생이 하필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속이 상해 며칠 동안 밥도 먹지 못했다는 이씨는 어머니가 어떻게 사셨는지, 남동생은 어떻게 살았는지 듣고 싶다고 했다.
부부, 형제자매 상봉이 줄고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의 자녀 등 '한 다리 건너' 혈육을 만나는 일이 많아지는 추세는 이산가족들이 나날이 고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이산가족 등록자는 총 13만2천603명이지만 이 중 5만6천862명만이 생존해 있다. 생존자 중에는 80대가 41.2%, 90세 이상이 21.4%를 차지한다.
이번 상봉에서 사망한 남동생의 아내(81)와 여동생의 남편(88)·딸(46)을 만나는 조성연(85)씨는 "이번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고 헤어지면 제2의 이산가족이 될 것 같다"며 "앞으로 언제 또 만날지 기약이 없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조씨는 "앞으로 서신이라도 주고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통일부와 적십자사에도 얘기했다"고 말했다.
kimhyo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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