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O 정책위원장 "포털서 권력 입맛 맞는 결정한 적 없어"

입력 2018-08-20 07:01  

KISO 정책위원장 "포털서 권력 입맛 맞는 결정한 적 없어"
이해완 위원장 7년 만에 퇴임…"MB 때 국정원이 불러 '처리 잘 해달라' 얘기도"
"정치에선 '표현의 자유' 더 중시해야"…'저작권 합의금 장사 방지 법안' 필요

(서울=연합뉴스) 홍지인 기자 =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는 널리 알려져 있진 않지만, 네이버와 카카오를 비롯한 국내 주요 인터넷 업체가 게시물이나 연관검색어 등에서 스스로 다루기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 처리를 맡기는 업계 자율 기구다.
우리나라 여론 형성 과정에서 포털을 비롯한 인터넷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만큼, 첨예한 정치적 논란에서부터 연예인의 스캔들, 재벌총수 일가의 신변잡기, 종교 관련 논쟁까지 우리 사회의 온갖 민감한 주제들이 KISO의 처분을 거친다.
이 KISO 정책위원회의 수장을 지난 2011년부터 7년 동안 맡아 온 이해완 정책위원장(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마침내 직에서 물러난다.
이 위원장은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KISO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재임 기간의 소회로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나 눈치를 보지 않고 활동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그런 것이 KISO의 전통으로 계속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재임 기간 3개의 정권을 거치며 그야말로 '격랑'이란 말로 표현되는 외부 상황이었지만, KISO의 독립성에 대한 그의 자신감은 확고했다.
그는 "실제로 정치나 종교 등 민감한 사안이 많았지만 KISO에서 결정이 난 이후에 크게 민감한 반응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권력이 KISO를 가만히 놔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외압이 없었다고 말할 순 없다"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몇몇 사례를 살펴보면 음으로 양으로 KISO에 가해진 압력의 무게를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그는 대표적인 일화로 MB(이명박) 정권 시절 일어난 일을 들었다. 갑자기 국가정보원이 이 위원장에게 '내곡동'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라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당시 회의에 대해 "(국정원 측에서) '그런 (민감한) 사건들도 처리를 잘 해달라'는 얘기가 나오길래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특별한 사건을 갖고 요구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면서도 "갖다 오니까 꺼림칙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당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인터넷에서는 정부 조사 결과를 불신하고 잠수함 충돌설 등 온갖 음모론이 불거졌고, 이런 내용에 대해 삭제 검토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위원장은 "우리는 거기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고 모든 결정을 내렸다"고 회고했다.

18대 대선 직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시절에도 '부정선거', '악수거부', '돌대가리', '생식기' 등 '박근혜'에 붙는 연관검색어를 삭제하라는 요구가 들어왔지만, KISO 정책위는 이를 기각했다고도 전했다.
이 위원장은 "권력의 입맛에 맞는 결정을 한 기억은 없다"며 "최고 권력자를 대상으로 할수록 표현의 자유는 더 커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치권력뿐 아니라 사실상 KISO의 대주주라고 할 수 있는 네이버를 비롯한 회원사들의 입김에서도 자유로웠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이 위원장은 "정치적 영역에서는 조금 심할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더 중시한다. 정치인들이 수용해야 할 부분"이라면서 "정치 이외의 영역에서는 가치 균형을 이루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여러 부작용에도 인터넷에 대한 규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많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인터넷 공간을 섣불리 규제하면 '교각살우(矯角殺牛·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의 어리석음'을 범한다"며 "국가법에 의한 규제는 최소화해야 한다. 그 대안은 자율규제"라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갈등이 만들어졌다기보다는 국민과 사회 내면에 있는 갈등이 인터넷으로 표출된 것"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최근 '드루킹 사건'으로 불거진 인터넷 여론 조작 논란에 대해선 "그런 것을 인터넷에 대한 사전 표현 규제의 빌미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회원사들이 그런 것을 최대한 막을 수 있도록 기술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KISO 정책위원장 퇴임 후에도 '표현의 자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최근에는 '저작권 합의금 장사 방지 법안'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용역 제출했다.
이 법안은 일반인이 저작권 관련 고소를 당하더라도 저작권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하면 경찰 수사를 받지 않고 원만한 합의를 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최근 인터넷에서 글꼴이나 사진을 멋모르고 썼다가 저작권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법무법인으로부터 고소를 당하고 적잖은 합의금을 내는 사례가 잇따르는 것에서 착안한 법안이다.
이 위원장은 "저작권 관련 형사처벌 대상을 줄이고 합리적인 배상액만 내면 억울하지 않게 처리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권리를 침해받은 저작권자도 빠르고 간편하게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후임 KISO 정책위원장은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맡을 예정이다.
ljungber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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