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체류 350만 난민, 서방과 갈등 때마다 '레버리지' 역할
걸프국 단교 조처 때 도움 받은 카타르, 거액 투자하며 '보은'
'50% 플러스 알파' 콘크리트 지지층…"'서방이 터키 공격' 논리 먹혀"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대미 관계 악화에 따른 리라화 폭락으로 터키에 외환위기 우려가 급격히 고조되고 신흥시장까지 그 여파가 번질 조짐인데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전혀 물러설 조짐이 없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이러한 압박에도 버틸 수 있는 배경으로는 ▲ 350만 난민 ▲ 카타르 등 중동 우방 ▲ 콘크리트 지지층이 주요하게 거론된다.
시리아 난민 등 300만∼350만명에 이르는 대규모 난민은 터키와 서방의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결정적인 '레버리지'나 '전가의 보도' 역할을 했다.
서방과 갈등이 표출될 때 터키 고위 관리나 '정의개발당'(AKP) 인사들은 여러 차례 "난민 수십만명을 버스로 국경에 풀어 놓겠다"며 유럽을 압박했다.
2015년 절정을 이룬 대규모 난민 사태는 유럽 전역에서 여러 정권을 무너뜨리고 극우 세력이 득세하는 등 유럽의 정치지형을 뒤흔들었다.
이번 리라화 폭락 사태에서도 프랑스24 등 서유럽 매체는 에르도안 정권이 궁지에 몰려 유럽연합(EU)과 체결한 난민송환협정을 거론하는 등 실제로 난민 레버리지를 활용할 가능성을 분석하며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유럽 은행·자본은 어느 나라보다 터키 위기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기도 하다.
터키 언론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반응을 주시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5일 메르켈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고, 양국 관계 강화를 모색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터키 대통령실이 공개했다.
앞서 13일 메르켈 총리는 베를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터키리라 폭락 사태와 관련 "독일은 터키경제 번영을 원한다"며 "그것이 우리 이익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중동의 수니파 국가, 그 가운데서도 카타르는 터키 정부의 든든한 우군이다.
카타르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국으로부터 단교를 당하고 육상 수송로가 차단돼 위기를 겪었을 때 터키로부터 신속한 지원을 받았다.
이달 15일 카타르 군주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타니는 '형제 터키'에 15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하며 보은했다.
터키 국내외 매체가 '50% 플러스 알파'로 표현하는 지지층도 에르도안 대통령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들에게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1년 최악의 경제위기를 극복한 '경제 지도자'로 각인됐다. 2001년 경제 위기 때 연간 인플레이션은 69%까지 치솟아 현재의 16%보다 훨씬 심각했다.
터키 정부는 현재까지는 미국의 압박을 버틸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 사위인 베라트 알바이라크 재무장관은 16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으로 갈 계획은 없다"고 단언했다.
같은 날 대통령실 이브라힘 칼른 대변인도 독일, 프랑스, 러시아, 카타르, 쿠웨이트가 터키에 연대를 표명했다고 밝히고, "리라 투기를 부추긴 환경을 모두 제거했다"고 주장했다.
현재까지 터키 내부에서는 심각한 동요 여론이 감지되지 않는다.
서민층 대다수가 아직은 리라 폭락 사태의 여파를 체감하지 못한 까닭이다.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 여부와 무관하게 일반적인 터키인의 정서는 이번 사태를 터키경제의 문제점이라기보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에르도안 대통령의 갈등 문제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룬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압박에 따른 리라화 폭락이 에르도안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제재가 터키에 구금된 앤드루 브런슨 목사 석방을 유도할 것으로 판단하고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으나, 현재까지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의 터키프로그램 책임자 소네르 차압타이는 최근 외신에 "경제 제재를 무기로 활용한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은 '서방이 터키를 공격하고 있다'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평소 주장에 더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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