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바닥나 외부에 손 벌려야…대미·군부 관계도 부담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17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차기 총리에 오른 임란 칸 파키스탄 테흐리크-에-인사프(PTI) 총재의 앞날은 한마디로 사면초가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지난달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정권교체까지 해냈지만, 경제와 외교 분야 등에서 난제가 잔뜩 쌓여있기 때문이다.
◇ '밑 빠진 독' 파키스탄 경제…돈 쓸 곳은 수두룩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경제 문제다.
파키스탄은 대규모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시달린 탓에 외화 보유액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파키스탄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12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각각 20억달러와 45억달러의 차관을 들여오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국영 항공사를 포함해 모든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정도로 파키스탄 경제에는 '빨간 불'이 들어온 상태다.
더욱이 자존심을 굽히고 외국에 손을 내민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돈을 빌릴 수도 없다는 점은 파키스탄으로서 더 큰 고민이다.
우선 미국이 대놓고 파키스탄에 대한 IMF 구제금융을 반대하고 있다. 파키스탄으로 들어가는 돈은 결국 중국이나 중국 채권자에게로 흘러갈 것이라는 점에서다.
또 중국 돈을 자꾸 빌리면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심화할 우려가 있다.
중국이 파키스탄에 투자한 인프라 사업 총액은 460억 달러 규모의 일대일로 경제회랑(CPEC) 사업을 포함해 620억 달러에 이른다.
파키스탄은 이 같은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진행하면서 재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올해 이미 중국에서 39억 달러를 빌린 바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들여오는 돈은 원유 수입에 투입해야 한다. 파키스탄의 무역적자 중 상당 부분은 원유 수입에서 비롯되고 있어서다.
새 정부는 이 밖에도 돈 쓸 곳이 수두룩하다.
칸 신임 총리가 유세 과정에서 공약한 '이슬람 복지 국가'를 실현하려면 또다시 대규모 재원이 필요하다.
그가 약속한 것처럼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하고 건강, 교육 분야에 큰돈을 쓰면 또다시 '빚의 수렁'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결국, 파키스탄으로서는 선뜻 IMF 구제금융이나 중국 자금 지원을 받기 어려운 입장인 데다 자금을 확보하더라도 또다시 대규모 재정지출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무슈타크 칸 파키스탄 중앙은행 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새 정부는 재정·무역 쌍둥이 적자 때문에 정책 운용 폭이 제한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지지자들은 일자리와 함께 부패 없는 정부를 원하고 있고 새 정부는 장기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균형 잡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군부·테러·대미 관계…국내외 상황도 '가시밭길'
아울러 칸 정부가 정국 주도권을 확실하게 틀어쥐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총선에서 연방하원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탓에 군소 정당 등과 연정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군부 입김이 강해지게 된다.
군부는 1947년 파키스탄 독립 후 이번 선거까지 직간접적으로 정치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쳐왔다.
군부는 어느 한 당이 주도하는 강력한 정부를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당이 쪼개져 치고받고 싸워야 군부가 군축 위협 없이 외교, 예산 등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군부는 이번 총선에서도 그간 군부에 맞선 여당 '파키스탄 무슬림연맹(PML-N)'을 견제하고자 특히 PTI를 물밑 지원한 것으로 외신들은 전했다.
칸 정부가 원하는 어젠다를 추진하려면 우선 군부 그림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야 하는 게 과제인 셈이다.
칸 정부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는 야권도 다독여야 한다.
PML-N 등은 선거 과정에 군부가 개입했고 개표에도 조직적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권이 칸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지지자를 자극하며 대정부 투쟁을 벌이면 정국은 당분간 혼란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관계 개선 문제도 차기 정부에게는 어려운 퍼즐이다.
한때 우방이었던 양국 관계는 지금은 상당히 멀어진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파키스탄에 대해 "테러리스트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군사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자 파키스탄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다.
미국은 파키스탄이 테러조직 소탕을 위한 행동에 나선다면 지원 보류 결정을 재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양국은 그간 아프가니스탄 대테러전과 관련해 동맹으로 여겨질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미국 국무부는 지원중단 액수가 정확히 얼마인지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그 규모는 총 1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된다.
뿌리째 경제가 흔들리는 파키스탄에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급증하는 테러 위협도 파키스탄 정국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이번 총선 과정에서도 대형 테러가 잇따라 터졌다. 지난달 투표 당일인 25일 발루치스탄주(州) 주도 퀘타의 총선 투표소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31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퀘타 인근에서는 지난달 13일에도 선거 유세 도중 자폭 테러가 일어나 150여명이 사망한 바 있다.
두 테러 모두 공격 발생 후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선전매체 아마크통신을 통해 배후를 자처했다.
민생 안정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면 새 정부는 IS와의 테러 전쟁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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