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예술계 놀라게 한 사할린 한인 소녀들

입력 2018-08-19 19:21  

러시아 예술계 놀라게 한 사할린 한인 소녀들
韓전통예술 가르치는 에트노스예술학교…각종 대회 휩쓸어



(유즈노사할린스크<러시아>=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지난 18일 사할린주(州) 주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 소재 '러시아는 나의 역사' 박물관 앞 광장. 이날 사할린주한인회가 주최한 광복절 행사 시작은 현지 소녀 10여명의 흥겨운 우리 장단으로 시작됐다.
공연 시작 전 서로 얼굴만 보아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던 소녀들은 북과 장구, 꽹과리, 징을 들더니 눈빛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이번 공연을 위해 사할린을 방문한 한국 국립남도국악원 연주자들을 따라 무대 뒤편에서 무대 앞 광장까지 빙글빙글 돌며 흥겨운 길놀이(연희 장소로 이동하면서 거리에서 펼치는 놀이)를 선보였다. 신명 나는 휘모리장단에 객석에서도 아낌없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들은 현지 에트노스예술학교 한민족과(국악·전통무용) 소속 학생들이다. 러시아 민족예술을 가르치기 위해 1991년 설립된 이 학교는 1995년 한민족과를 처음 설립해 사할린 한인 3~4세 학생들에게 한국 전통 예술을 가르친다.
러시아 변방 섬 사할린, 그중에서도 소수민족인 한민족의 음악과 춤을 공부하는 작은 소녀들이지만, 현지에서도 실력과 명성을 인정받는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문화행사에 사할린 대표 공연단으로 참가했고, 2016년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타악경연에서는 사물놀이 연주로 대상을 받는 등 각종 대회에서 상위 성적을 휩쓴다. 작년에는 한-러 우호 축제에도 참가했다.
율리아 신(43) 에트노스예술학교 한민족과 부장은 "러시아 예술학교 중 조선예술학과가 설치된 곳은 우리 학교 한 곳뿐"이라며 "설립자는 러시아 인이었지만 소수민족들의 전통문화도 보존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과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설립 첫해 8명이던 학생 수는 점점 인기를 얻어 현재 140명으로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현재 5~16세 학생들이 장구, 가야금, 전통춤, 한국 역사 및 문화를 배운다.
사할린대학에서 러시아 전통음악을 전공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 가야금 등 한국 전통음악 석사과정을 이수한 신 부장 등이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날 함께 공연을 펼친 국립남도국악원과도 2012년부터 교류 중이다. 이들은 꾸준히 한국을 방문해 국립남도국악원의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공연에 참가한 이선옥(16) 양은 서툰 한국어로 "한국 문화와 전통을 기억하고 싶다"며 "한국에서 오신 선생님들과 함께 길놀이를 해서 정말 반갑고 기쁘다"고 말했다.
소녀들의 뜨거운 열정에 비해 환경은 열악한 편이다.
학생 수는 급증하지만 학교에서 보유 중인 전통 악기 수는 한정된 상황이라 서로 돌려가며 연습한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공연에 필요한 의상도 한국에서 천을 사와 직접 만들어 입는 형편이다.
신 과장은 "유즈노사할린스크시 지원도 많이 줄어든 상태"라며 "대회나 행사 참여로 번 돈을 과 운영에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sj997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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